[2016 신춘문예-단편소설] 농담이 아니어도 충분한 밤 / 권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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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노인호 기자 nogari@busan.com

주소를 들고 찾아간 동생의 집은 여섯 평 원룸이었다. 작은 냉장고나 구식 텔레비전 같은 것은 옵션이었고, 따라서 처분해야 할 짐은 많지 않았다. 옷가지들은 내가 준 것이 대부분이었다. 책이나 일기장 같은 것도 없었다. 동생은 죽기 사흘 전에 월세를 지불했지만 집주인은 돌려주마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동생의 자취를 없애주길 바라는 의도가 분명했다. 나는 열쇠를 건네받으면서 정리가 다 되면 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주인은 하루에 한 번씩 오층 계단을 올라와 재촉했다. 하루나, 늦어도 이틀, 사실을 말하면 한두 시간이면 정리할 시간으로 충분한 게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동생이 자살한 것에 대한 배려 때문인지 그다지 심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어제 다시 마지막으로 이틀 시간을 더 주고 다시는 올라오지 않게 해달라고 못 박았다. 늙었다고도 젊었다고도 말하기 애매한 주인 여자는 아마도 같은 방에서 연거푸 두 자매의 시체를 찾아내는 일 같은 걸 염려하는지 모른다. 남편과 아이도 매일 전화를 걸어와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그저께와 어제는 짜증을 냈다. 동생의 유골함은 오 일째 방 귀퉁이에 놓여 있다.



*



어쩌면,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내가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어제 밤이라고 해야 하는지, 오늘 새벽이라고 해야 하는지, 그런 시간에 나는 벽을 기어오르던 사내와 눈이 딱 마주쳤다. 동생의 방은 밤에도 낮에도 밤이었다. 창에 암막 커튼이 쳐져 있어 동면하는 짐승이 되어도 좋을 만큼 어두웠다. 소음은 밤낮으로 징그럽게 귀를 지치게 했다. 컹컹. 어디선가 개가 두어 번 짖었다. 나는 지난 오 일간 그랬던 것처럼 오래 뒤척이다가 창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 도시가 웅크려 있었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를 싸안은 산의 실루엣과 드문드문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들은 까만 허공 속에 떠있었다.

사내는 내가 창문을 열었을 때 거미처럼 벽을 오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에 그는 벽에 몸을 밀착시킨 채 숨죽여 있었는데, 누군가의 눈길이 닿는 것과 동시에 보호색을 띠는 거대한 파충류처럼 딱딱한 벽과 뭉쳐져 벽의 일부처럼 보였다.

"쉿!"

사내는 오른손으로 배관을 움켜쥐고 왼손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검지 아래로 사내의 입술이 가로로 길게 늘어졌다. 사내는, 웃고, 있었다. 하마터면 나도 따라 웃을 뻔했다. 순간, 나는 마치 우리가 숨바꼭질 중인 아이들처럼 여겨졌다. 술래인 내가 마지막까지 숨어 있던 아이를 기필코 찾아낸 것처럼. 단순하고도 지치는 놀이. 한 아이가 너무 꽁꽁 숨으면 모두들 그 아이를 찾다가 결국 지쳐 놀이를 끝내버리고 집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사내는 나이뿐 아니라 체격도 가늠할 수 없었다. 눈동자만 빛을 내며 어둠 속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외국인인지도 몰랐다. 고개를 쳐든 사내 아래로 쓰레기들이 몰려 있는 벽돌담이 어둑하게 보였다. 멀리 공장 굴뚝에서 하염없이 연기가 치솟아 어둠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23년 만에 동생을 만났을 때 나는 우리가 자매라는 사실을 잠시 의심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는 날, 동생은 어머니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 등 뒤에 있었던 이유로 우리는 각자 가까이 서 있었던 어머니 혹은 아버지와 살았다. 두 분은 결코 만나는 일이 없었고 따라서 동생과 나도 애초에 인연이 닿지 않았던 사람처럼 단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두 분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을 때 다시 만난 동생은, 의아하게도 내가 기억하는 모습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얀 원피스에 빨간 구두, 노란 나비 리본 머리띠. 내게 남은 동생의 이미지는 얼굴이 아니라 색이었다. 그 색들은 강렬해서 나는 동생이 화려한 여자로 살고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열두 살 아이의 기억은 고작 그 정도였다. 동생의 낡은 바바리와 뒤로 질끈 동여맨 탄력 없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나는 남은 기차 시간을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다. 눈물을 질금거리며 동생과 나란히 앉은 이모 역시 기억 밖의 모습이긴 마찬가지여서 나는 자칫 아줌마,라고 부를 뻔했다. 카페 창밖으로 벚꽃잎이 마구 떨어져 내리던 팔공산 자락은 얼마나 깊은 산골짜기의 오후였던지를 나는 기억했다. 그날, 아이가 문제를 일으켜 학교로 와 달라고 담임이 전화를 했고, 혈액투석을 받고 있던 시어머니가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시누이가 전화를 했다. 담임의 전화는 대구역에 내릴 때쯤이었고, 시누이의 전화는 찻집에서 동생과 막 마주 앉을 때쯤이었다. 향기로운 산내음을 맡으며 나는 낯선 동생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지 않았다. 그리고 오 년이 지났다.

동생의 방에서 나는 매일 오전 내내 지면을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투다다다다. 투다다다다…. 어디선가 굴착 공사를 하고 있었다. 도로가 파헤쳐지는 그 소리는 뙤약볕 야구장의 함성 같았고, 실책을 한 선수에게 수천 명의 관중이 일시에 퍼붓는 야유 같았다. 우와와와와. 우우우우….

어느 날, 그리고 또 어느 날 동생은 전날 밤에 있었다는 일을 말했다. 어젯밤에 쥐를 삼켰어. 지난밤에 유산을 했어. 그런 식의 말을 들은 나는, 니가 쥐를 삼켰으면 나는 코끼리를 삼켰게. 라든지, 나는 날마다 인간을 하나씩 죽여. 오늘로써 4천783명이야. 같은 대꾸를 했다. 바로 그 날은 동생이, 간밤에 아이를 낳았어, 라고 하면서 아랫배를 만져보고 업은 아이를 보듯 등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만나기 전에 동생이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애는 어디다 버리고 왔니? 내가 그렇게 대꾸했던 것 같은데, 동생은 진지한 표정으로, 글쎄. 어디 갔을까, 하면서 두리번거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동생이 웃으려고 하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나도 함께 농담을 했을 뿐이다. 단지 농담.

의미 같은 건 없었다. 어차피 모든 것은 농담이며, 농담에 의미 같은 걸 부여하지 말아야 했다. 동생이 어머니를 따라간 것도, 내가 아버지와 살게 된 것도, 우리가 23년간 만나지 못하고 산 것도, 그리고 고작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사이가 된 것도 누군가가 작정하고 만들어낸 상황은 아닌 것이다. 그저 우스꽝스러운 농담 한 마디처럼 가볍고 쉬워서 오래, 깊게 되새길 만한 것이 못되었던 것뿐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이 내 집으로 왔다. 내가 서울엔 무슨 일이냐고 물은 것도 잘못이었지만, 동생이 볼일,이라고 대답했을 때 무슨 볼일? 그렇게 물었던 건 더더욱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나를, 언니를 만나러 온 동생에게 무슨 볼일이라니. 나는 여행 간 하와이에서 구입한 코나 커피를 끓여주었고, 동생은 석 잔이나 마셨다. 커피 잔을 들고 소파에 깊숙하게 몸을 묻은 채 하와이가 좋더냐고 물었고, 향이 기가 막히다고 감탄했다, 지나치게.

"언니. 마지막 순간에 이런 향을 맡으며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치? 황홀할 것 같잖아."

"캐나다에서 한때 가장 인기 있었던 자살 방법이 뭔 줄 아니?"

내가 물었을 때 동생은 눈치 빠르게도, 그 방법이 커피와 관련된 건지 되물었다.

"질소와 관련된 거야." 나는 동생의 잔에 커피를 더 부어주면서 말했다.

"거 왜, 너도 들어봤을 걸. 탈출봉지라고. 마지막 비상구라고도 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봉지라고도 한다나? 언젠가 그 나라에서 시판하려고 했대잖아. 결국 법이 막았지만."

"탈출 봉지…. 근데 질소는 뭐야?"

"비닐봉지 같은 것에 드로스트링을 이용하는 건데, 산소 부족에 의한 페닉 상태를 줄이기 위해 질소를 봉지 안에 넣어준대. 그러면 아주 편하게 숨이 멎을 거라나."

나는 어디선가 본 얘기를 했다. 죽고 싶어하는 많은 인간과, 돈벌이에 환장한 인간과, 죽음의 자유까지 구속하는 법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하와이와 커피와 농담이었다. 그렇게 동생과 나는 가벼운 농담밖에 주고받을 수없는 사이였다.

"질소 대신 커피? 더욱 황홀할 거다, 뭐 이런 얘기?"

그렇게 말하며 동생은 정말 즐거워했다. 적어도 그날 밤 그렇게 죽을 사람은 아니었다.

동생은 커피를 마시다가 불현 듯 베트남 쌀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집 근처 작은 식당의 베트남 쌀국수 맛이 기가 막히다고 한 번 같이 먹자고 했다. 나는 그런 나라 음식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느냐고, 고작 국수 한 그릇 먹겠다고 서울에서 대구까지 갈 수는 없는 일이니, 언제 기회가 있으면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동생과 나에게, 뭘 먹으러 같이 가자는 말은 그저 말 그대로 '언제 한 번'의 기약 없는, 그야말로 지키지 않아도 무방한 약속이었다. 동생은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일어섰고 나는 자고 가라는 식의 말로 붙잡지 않았다.

동생을 만나면 남편은 그저 한번 어색하게 웃고 자리를 피해주는 정도로 예의를 표했다. 동생이 거실에 있으면 남편은 안방에서 나오지 않은 채 필요한 게 있을 때마다 나를 불렀고, 동생이 방에 있으면 남편은 거실에서 파자마를 갈아입지 않고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남편의 태도를 트집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에게 동생은 어느 날 알게 된 옆집 아줌마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나는 모르지 않았다. 내가 동생에게, 혹시 자고 갈 거니? 그렇게 물었던 적은 있었지만 동생은 한 번도 내 집에서 자고 간 적이 없었다. 나 역시 남편의 승진과 아이의 진학 문제를 앞둔 주부답게 충실히 가정을 지켰기 때문에 동생의 집에 내려간 적이 없었다. 가져가라고 싸준 커피는 동생이 간 뒤에도 그대로 소파에 놓여 있었다.

동생은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죽었다. 바로 그날 밤에.



*



밤에 길을 나선 것은 잘못이었다. 어제 밤, 원룸 뒤쪽 골목을 한 바퀴 돌려고 했던 것이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각종 폐지와 고철덩어리들이 찌그러진 채 쌓여 있는 고물상이 있었다. 고물상 마당으로 허리가 둥글게 휜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들어섰다. 그 옆으로 조악한 글씨의 베트남 쌀국수 간판이 보였다. 몇몇 외국 사내들이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고물상 뒤로 산재한 조립식 건물들의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연기들은 검고 희거나 혹은 회색, 더러는 푸른빛을 띠었지만 모두 한 방향으로 피어올라 허공을 떠돌다 사라졌다. 도심 속 공단이었다. 온갖 소음덩어리들이 무리 지어 몰려다니다가 무수한 자동차 소리에 맥없이 섞여 들었다. 모두 동생의 방 창으로 본 풍경들이며, 들었던 소리들이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길을 잃을 줄은 몰랐다. 동생의 방에서 내려다 본 곳이라면, 거기서도 동생의 방 창문이 보여야 마땅했다. 그러나 창문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본 곳과 보였던 곳을 찾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특히 밤에는. 어둠의 완강한 질서에 굴복당한 느낌이었다. 방에 불을 켜두고 나왔지만 4층인가, 주차장을 포함하면 5층인 동생 방 창은 아무 데도 없었다. 나는 아무 곳이나 무조건 걸어갔다. 어차피 내가 가늠한 방향은 믿을 수가 없었다. 쓰레기 봉지가 발에 걸렸다. 휘청거리며 건물을 끼고 돌았다.

다시 나타난 고물상. 베트남 쌀국수 간판. 오 일 전 동생의 유골을 안고 내렸던 지하철역으로 가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을 물을 데가 없었다. 외국 사내들은 자기네 나라 말로 지껄이며 멀어져 갔고, 리어카를 끌던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어느 순간 동네 건물은 온통 불이 꺼졌고, 어느 창에서는 불빛이 서너 번 깜빡이다가 다시 꺼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이 창, 저 창에서 신호라도 보내듯 불을 깜빡이기 시작했고 동네 전체에 불꽃놀이라도 하듯 번쩍이며 와글거렸다. 수천 개의 불빛들이 물결치며 휘돌았다. 고개를 치켜들고 동생 방의 창을 찾던 나는 멀미를 일으켰다. 비틀거리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니었다. 왼쪽이었나. 역시 아니었다. 골목은 무수히 많았고 원룸도 무수히 많았다. 일주일간 내가 창으로 보았던 골목은 점점 낯선 곳으로 변해갔다. 내가 내려다보았던 골목이 아닌 것처럼, 모든 건물과 굴뚝과 하늘이 낯선 것처럼, 골목의 모퉁이와 벽들이 나를 조롱하고 나에게 위협적으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는 것처럼. 나는 골목을 휘청거리며 돌아다녔다. 같은 골목을 수십 번 더 돌았다.

동생의 집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내 눈에 띄었다. 건물 이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건물을 찾은 나는 다시 한번 밤의 방향을 믿지 않기로 작정했다.

여러 정황상 동생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특히 죽은 동생이 왼발엔 검정색, 오른발엔 빨간색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있었다는 것이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님을 말하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했다. 그리고 뜯지도 않은 화장품(새도우나 루즈 같은)이나 역시 개통되지 않은 휴대폰 같은 것들이 나왔을 때 마트나 전자대리점에서 훔쳐온 게 분명하다고 했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이미 동생은 두 번의 절도 전과가 있었고, 절도 수배 중이었다. 나는 동생의 방에서 새끼손가락 끝 마디만한 말랑말랑한 물건을 여러 개 찾아냈을 때(그것은 귀마개였다) 동생이 불면증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커피와 잠의 상관관계에 대해서가 아니라, 귀마개와 짝짝이 양말의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인터폰 화면은 남자의 얼굴에서 신분증으로 바뀌었다. 찾아온 사람은 둘이었고, 경찰이었다.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었다.

"지난밤에, 아니. 새벽인가에 혹시 창밖에서 무슨 소리 같은 거 못 들었나요?"

나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그들의 입이 달싹거렸을 때 나는 귀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귀마개를 끄집어냈다.

"뭐라고 하셨나요?"

"못 들었어요?" 경찰 중 하나가 짜증내듯 소리를 높였다.

"이 건물에서 사람이 떨어졌어요. 밤에 소리 같은 거, 가령 비명 소리라거나 싸우는 소리라거나 뭐 그런 소리 들은 거 없냐고 물었잖아요."

그들은 떨어진 높이가 몇 층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손바닥을 펴서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보시다시피 이런 상태라서요."

두 경찰은 성큼 다가와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원뿔형의 귀마개 두 개가 손바닥에 놓여 있었다.

"이게 …… 귀마갠가?" 얼굴이 동글납작한 경찰이 귀마개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런 걸 왜 하죠? 하고 말했다. 곁의 경찰이 가는 눈을 빛내며 다가섰다. 그는 동료의 질문보다 자신의 질문이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눈치였다.

"죄송한데 얼마 전에 동생분이 여기서…… 주인한테 들었어요."

"그거랑 상관있는 일인가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데 여기 사시는 게 아니라던데 왜 여기 계시는 거죠?"

"짐 정리가 덜 되어서요."

내 말을 듣고 동글납작한 경찰이 집안을 슬쩍 훔쳐보고는 내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휴대폰 번호와 이름을 받아 적은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단 말이죠. 라며 다시 차트에 뭔가를 끄적였다. 그리고 "정말 아무 소리도……" 하다가, 볼펜으로 차트를 톡톡 치며 야릇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인터폰 소리는 어떻게 들었죠?"

"저는 인터폰 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다고 말하지 않았는데요."

좀 전에 차트에 뭔가 기입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또 뭔가를 적어 넣었다. 혹시 뭐든 생각나면 이리로 연락하세요. 나는 명함을 받아 슬쩍 훑어본 다음 신발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뒤로 돌아서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아, 그리고 밖에 나가실 땐 귀마개 하시면 위험합니다. 물론 잘 아시겠지만."

그때 다른 경찰관은 앞집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죽었나요? 나는 그렇게 물으려다가 문을 닫았다. 걸쇠도 걸었다. 그리고 인터폰으로 다가가서 '현관'이라고 쓰인 버튼을 눌렀다. 7센티 가량의 화면에 경찰의 뒤통수가 나타났다. 문을 열고 고개만 내민 앞집 사람은 필리핀 남자처럼 보였다. 나는 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컴 히에우. 우리… 모, 몰라요."

"바…밤에, 일, 일해요."

"또이멧꽈(피곤해요.)"

다시 화면에 눈길을 주었다. 필리핀 남자는 양손을 펴서 흔들어댔다. 남자 어깨 쪽에 바짝 얼굴을 붙인 가무잡잡한 여자가 보였다. 경찰은 또 무언가를 끄적였다. 두 남자가 윗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몸을 틀었다. 앞집 현관이 닫혔다. 나는 인터폰 화면을 껐다. 두 남자의 시시덕거리는 웃음소리와 발소리가 쿵쿵 울렸다. 나는 귀마개를 신경질적으로 귀 속에 밀어 넣었다.

햇빛이 눈을 찔렀다. 방으로 쏟아지는 볕이 지나치게 환했다. 커튼 봉을 천정에 달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섰다. 못이 박힌 봉의 끝부분을 창문틀에 갖다 대려다 다시 의자에서 내려섰다. 못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보였다. 소름이 끼쳤다. 꿈이 아니었어. 어째서 꿈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어젯밤에는 몰랐다. 남자가 봉을 잡으려다 못을 잡아챘다는 걸. 물티슈를 뽑아 피를 닦아냈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못이 꽂혔던 자리를 찾다말고 창문을 열었다. 고개를 빼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담벼락 아래에는 페트병과 담뱃갑 같은 쓰레기들이 몰려있었고, 그 주위로 노란 폴리스 라인이 둘러쳐져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하얀 꽃잎들이 쓰레기가 있는 바닥을 덮었고, 허공에 휘날렸다. 벚꽃이 지고 있었다. 속임수처럼 라일락 향기가 어지럽게 몰려왔다.

나는 상체를 창밖으로 완전히 내민 채 몸을 비틀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시멘트벽은 위로 한 층 더 뻗어 있었다. 벽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견고했다.



*



동생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세 번의 동거와 역시 세 번의 이별을 거쳤다고 했다. 아버지를 포함하면 네 번. 아버지가  평생 되씹던 어머니의 바람기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 동안 동생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을까.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23년보다 이후 5년이 어쩌면 동생에게 훨씬 긴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엽서 한 장과 편지 하나를 발견했을 때였다. 편지는 동생의 낡은 코트 주머니에서 나왔다. 받는 사람은 동생이었고, 보낸 사람은 술리스또. 석 달 전에 받은 엽서였다.

엽서의 사진은 높은 빌딩에 만들어진 수백 개의 창문처럼 보였다. 다시 보았을 때 그것은 빌딩이 아니라 암산이었다. 균형 잡히지 않은 절벽은 제멋대로 끼운 블록처럼 곧 쓰러질 듯 기우뚱해보였다. 암벽 가운데 여기저기 창문 꼴로 구멍이 나 있었고 뚫린 구멍들마다 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기괴한 모형이 들어차 있었다. 술라웨시 토라자무덤. 사진 아래쪽 작은 글씨였다.

 

여기는 내 고향입니다.

당신이 꼭 와보고 싶다고 한 곳입니다.

여기 사람들은 돌산에 구멍을 내서 시체를 묻기도 합니다.

사진으로는 잘 안보이겠지만 해골들이 절벽 사이사이에 끼어있습니다.

여기선 결혼식보다 장례식이 훨씬 화려합니다.

가족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평생을 보내기도 합니다.

비용을 마련할 때까지 시신을 집안에다 미이라처럼 만들어 보관하는 집도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작은 한국인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정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곧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시 일할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나는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나라 사람이 편지 쓰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슬라맛(안녕히)

2015년 1월 5일

 

다시 엽서를 뒤집어 사진을 보았다. 마치 건물처럼 90도 각도로 세워진 돌산에 뚫린 구멍. 그 곳마다 들어찬 것이 시체였던가? 술리스또가 사람 이름이라면 누구인가. 당연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유치원생의 글씨 같다고 생각했더니 역시 한국인이 아니었다. 술리스또. 인도네시아인인가. 스마트폰으로 술라웨시 토라자무덤을 찾아보았다. 엽서와 같은 사진들이 나왔다. 알록달록한 목각인형들이 절벽 구멍 사이에 끼어 있어 기괴하면서도 얼핏 화려해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 '망자의 땅'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봉투에 든 편지에도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A4용지에 인쇄된 타자글씨였다.

 

당신에게 배운 말로 편지를 씁니다.

한국을 떠난지 일년이 넘었습니다.

언제 다시 갈수 있을지 아직은 알수 없습니다.

당신이 보내준 돈을 다 주었는데도 비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추방당한 불법체류자는 비자를 받기가 많이 힘듭니다.

이 편지 쓰는데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슬라맛

2013년 12월 22일

 

엽서보다 일 년 전이다. 엽서에는 다시 편지하겠다고 되어있었지만 더 이상 인도네시아에서 온 편지는 없었다. 나는 방 모퉁이에 놓여 있는 동생의 유골함을 힐껏 보았다. 아버지를 따랐던 동생은 왜 하필 어머니 옷자락을 잡고 있었을까. 가위 갖고 와! 몹시 화가 난 얼굴로 아버지가 소리쳤을 때 동생은 서랍장을 뒤져 가위를 아버지에게 건네주고, 아버지가 가위 든 손을 치켜들자 얼른 어머니 뒤로 피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빨간 치마를 단번에 잘라버린 것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못의 피를 닦아낸 휴지를 변기에 내리고 세수를 했다. 현관을 나서면서 귀마개를 뽑아 신발장 위에 올려놓았다. 귀마개는 경찰의 명함 위에 얹혀졌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을 때 위층에서 내려오던 두 경찰관과 마주쳤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들은 내 목례를 받는 둥 마는 둥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이 동네에선 통역을 달고 다니든지 해야지, 원. 그런데, 이 건물은 뭔가 어지러운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향신료 냄새야. 뒤죽박죽 섞여 나니까 역한 거야.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애들이 많잖아."

"우즈베키스탄이나 아랍 놈들은 또 어떻고, 혹시."

내 앞에서 계단을 내려가던 그들 중 한 명이 몸을 휙 돌렸다.

"뒤늦게 생각난 거 없어요? 아, 그거…."

내게 명함을 준 남자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지금 귀마개는 빼고 나온 거 맞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 발자국 소리가 쿵쿵 울렸다.

"떨어졌다는 사람이 누군가요?"

나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조사 중입니다. 이 건물 사람은 아닌데 어느 집을 방문한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계속 떠들었다. 옥상에 올라간 것 같은데, 죽으려면 더 높은 곳에 갔겠지, 겨우 6층 건물로 올라왔겠어? 아무튼 생각나는 거 있으면 연락하세요, 필요하면 연락하겠습니다,를 마지막으로 나는 그들과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로의 대형전자대리점 앞에서 스피커 볼륨을 한껏 높인 음악이 흘러나왔고, 반라의 댄싱걸 둘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들 앞을 막 지나는데 뭔가가 내 등을 탁, 때렸다. 춤추는 풍선인형이 바람을 맞아 허리를 길게 비틀어 꺾으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뺨을 쳤다. 나는 휘청거리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것은 춤을 추는 척하며 다시 한번 내 가슴팍을 걷어찼다. 그리고는 순전히 바람 핑계를 대며 내 어깨를 내리찍었다.

나는 라면 한 개를 사들고 다시 원룸으로 향했다. 내 앞으로 히잡을 두른 아랍계 여인이 마트 봉투를 들고 걸어갔다. 노란 봉투는 무게에 늘어져 여인이 연신 위로 들어 올리는데도 곧 터져버릴 것처럼 위태로웠다.

동생의 원룸 옆으로 공사 중의 건물들은 완성되기도 전에 임대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담이 되기 위한 벽돌들이 내 키높이로 쌓여 있었고 그 옆에 반죽하다 만 회색 시멘트더미가 놓여 있었는데, 물을 끼얹어놓은 꼭대기 부분이 마치 분화구처럼 파여 작은 화산처럼 보였다. 경찰들 말대로 계단에는 자타르(아랍 향신료)나 다운살람(인도네시아 살람나무 잎사귀) 같은 것들이 섞인 냄새가 났다. 동생은 왜 이 곳에 방을 얻었을까. 이 동네 어딘가의 공장에서 일을 했던 것일까. 이층과 삼층을 오르는 동안 어느 방에선가 새어나오는 노래 소리와 말소리.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우즈베키스탄 같은 나라의 것으로 짐작되었다. 어젯밤 그 사내는 어디서 왔을까.

 

*

 

사내의 손은 곧 내가 서있는 창틀에 닿을 듯했다. 사내는 오층 창틀에 손을 짚거나 다시 가스배관을 타고 내려가지 않고 여전히 벽에 찰싹 붙어 나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쉿!"

사내는 두 번째로 뾰족이 내민 입술 중앙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조용히!"

사내는 쩔쩔매는 듯 하면서도 위협하는 듯 보였다. 나는 숨이 턱, 멎는 것 같았지만 아무런 표정 없이 사내를 바라보았다. 저 남자는 지금, 이 시간에, 왜 저기에, 저렇게 위험한 벽에 매달려 있을까. 도대체 무얼 하려는 걸까. 나는 깊숙이 숨은 마지막 아이를 기어코 찾아낸 술래처럼 사내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사내의 큰 눈동자가 일그러졌다. 그러다가 다시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사내는 마치 술래에게 들켰는데도 자기 몸을 터치하지 않으면 게임이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누구 … 세요?"

내 목소리는 떨렸다. 합당한 질문이 아니었다. 도둑이라고 외치든지 그냥 그대로 창문을 닫든지 그랬어야 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필 내가 막 문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 사내가 입을 열었다.

"지금 몇 신가요?"

나지막한 속삭임이었다. 나를 얕잡아 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려는 자가 할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나는 남자 뒤로 공장에서 치솟고 있는 연기를 보았다. 어디선가 희미한 향신료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내의 얼굴을 다시 보았을 때 어이없게도 내 집 소파에 쪼그려 커피를 홀짝이던 동생을 보고 말았다. 동생은 대구로 돌아갈 기차표를 확인하며 내게 시간을 묻고 있었다. 나는 대답한다. 지금 나서야 해. 기차 놓치지 않으려면. 나는 벽에 붙은 시계를 연거푸 올려다 보며 커피 잔을 치우고 커튼을 치고 소파의 방석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알려준다. 지금, 지금 가야……. 나는 사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사내는 아예 곡예를 하듯이 한 손으로만 배관을 잡고 한 손은 아래쪽을 가리켰다가 내가 선 쪽을 가리켰다.

"내려갈까요, 올라갈까요?"

사내가 더 낮게 속삭였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커피향이 정말 황홀해, 언니. 그렇지만 돌아갈 시간이야. 나는 동생을 향해 나직하게 인사했다.

"슬라맛!"

"뭐라고?"

"안녕히 가라고, 이 개…새끼야."

나는 창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런 다음 잠금쇠를 세게 젖혀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사내의 손이 순식간에 내 눈 앞의 창틀을 짚었다. 그래서 나는 문을 닫는 대신, 창 위쪽에 힘없이 고정되어 있던 커튼 봉을 정신없이 잡아당겼다. 투두둑. 핀에 걸려 있던 암막천이 한 쪽으로 주르르 쏠렸다. 쏠린 천을 뭉쳐 내 겨드랑이에 끼우고 두 손으로 봉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침입자를 향해 겨누었다. 사내는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었다. 창틀을 잡았던 손도 아래로 내렸다.

"씨발. 내려가면 될 거 아냐."

사내의 입술이 일그러지더니 발을 내디딜 곳을 찾느라 허둥대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긴 봉을 창 밖으로 내밀었다. 봉 끝이 배관을 잡고 있는 사내의 주먹에 닿았다. 사내는 순간적으로 봉 끝을 잽싸게 움켜잡았다. 내가 잡고 있는 봉에 무게가 느껴지며 휘청, 들려올라갔다. 나는 창틀에 봉을 바짝 붙이고 두 팔꿈치로 그것을 세게 눌렀다. 사내가 아, 하며 낮게 비명을 내뱉고 봉을 다시 놓았다(거기에 튀어나온 못이 있었고, 사내가 그것을 움켜잡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봉 끝으로 사내의 가슴을 겨냥했다. 나는 막대를 쥔 손에 한껏 힘을 주었다. 사내의 몸은 점점 뒤로 젖혀졌다. 그는 겨우 한 손으로 배관을 쥐고 발은 허공에서 빙빙 돌았다. 나는 조금씩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조금 더, 더. 이를 악물고 봉을 밀었다. 배관에서 사내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리고 내 눈에서 사내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이 밤에 … 도대체, 왜, 나한테 … 농담을 하는 거지?"

나는 창문을 닫고 잠금쇠도 걸었다. 그리고 귀마개를 끼우고 유골 단지를 거꾸로 들고 비닐봉지에 쏟아 부었다. 눈물이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멀리서 새벽이 천천히 오고 있었다.

 

*

 

라면 봉지를 뜯다말고 나는 동생의 뼛가루가 든 봉투를 들고 다시 현관을 나섰다. 일층 계단에서 주인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밀대로 복도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있었다.

나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섰다.

"거기요, 잠깐만!" 주인이 불렀다.

"오늘 중으로 비워드릴께요. 아니, 지금 바로."

나는 빠르게 그녀의 말을 막았다. 밀대를 든 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녀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 계단을 내려섰다.

"도대체 이게 뭔 일이래. 두 번씩이나."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주인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빠르게 멀어져갔다.

동생의 원룸 근처에 공사 중인 건물은 세 곳이었다. 최신식, 풀옵션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외국인 근로자 환영!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풀럭였다. 나는 좀 전에 보았던 시멘트 더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휴식 시간인지 인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회색 시멘트는 분화구를 머금고 있었다. 삽이 한 자루 꽂혀 있었다. 이 시멘트는 마무리 공사에 쓰일 것이다. 벽이 되어 내내 도시의 귀퉁이를 차지할 것이다. 누군가는 자살하고, 공단이 헐리고, 도시가 없어질 때까지 굳건히 남아 모든 것을 다 보고 들을 것이다. 우연한 일로든, 운명 같은 일로든, 행복한 일로든 이 도시가 내뱉는 온갖 떠들썩한 소리들을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들고 온 봉지를 열어 동생의 뼛가루를 시멘트 위, 분화구 모양 속으로 쏟아 붓고 꽂혀 있던 삽을 뽑아 한 번 뒤적였다.

"이봐요, 거기!"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히 손에 든 삽을 있던 자리에 다시 꽂았다.

"어이, 거기 아줌마."

휴식을 끝낸 인부가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거기서 뭐하는 거요?"

어젯밤, 나는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 갈래갈래 찢긴 몸을 온통 바람에 내맡긴 채 떨어져 내리는 벚꽃의 농담 같은 함성을 느꼈을 뿐이다. 나는 인부의 말을 듣지 못한 척 몸을 돌려 베트남 쌀국수 집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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