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된 사죄 한마디면 혼자 안고 갈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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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 최고령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

한·일 양국 외무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협상 타결을 발표한 28일, 경남 통영의 한 요양병원에서 부·울·경 지역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인 김복득(98) 할머니가 TV를 통해 발표 장면을 보고 있다. 김민진 기자

"나쁜 놈들…. 이번엔 꼭 편히 눈감을 수 있게 해줬으면 참말로 좋았을 건데…."

오래전 메말라 버린 줄 알았던 아흔여덟 할머니의 두 눈가가 촉촉이 젖어 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 입술을 힘겹게 뗀 할머니는 "진심으로 사죄한다는 한마디만 하면 나 혼자 다 안고 갈 수 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7년 지옥 같은 위안부 생활
日 사죄 받자고 70년 버텨
"이번에도 편히 눈 못 감아"
한·일 합의에 또 한번 한숨


한·일 양국 외무장관이 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타결했다고 발표한 28일. 경남 통영의 한 요양병원에 누운 김복득(98) 할머니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 할머니는 부·울·경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 생존자이다.

굴곡진 삶의 끝자락에 선 할머니의 마지막 바람은 단 하나였다. 일제의 제국주의 야욕에 짓밟힌 조선인 처녀들의 꿈과 삶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였다. 할머니는 평소 입버릇처럼 "왜놈들 사과를 죽기 전엔 꼭 받아야 해. 안 그러면 눈을 감지 못한다"고 말해 왔다.

할머니는 스물둘이던 1939년 고향 통영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중국 다롄과 필리핀의 위안소에서 지옥 같은 삶을 버틴 세월이 무려 7년이었다. 1945년 광복 무렵에야 고향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지난 70년간 절대 아물지 않는 상처를 속으로 삭여왔다. 그래도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할머니는 작은 텃밭을 가꾸며 채소 등을 팔아 평생을 모은 재산을 지역 학교 장학금과 위안부 역사관 건립기금 등으로 내놨다.

그러나 이미 고장 나 버린 몸이 경고음을 냈다. 최근 들어 진통제 없이 하루를 버티기 힘든 할머니는 의료진에게 '임종 준비'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그렇게 버텨 온 할머니의 한 맺힌 외침은 이번에도 결국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양국의 합의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이번에 잘 됐으면 손을 들고 만세라도 외치고 싶었다"고 했다.

"할 말은 참 많은데, 요샌 입이 안 따라준다"는 할머니는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단다. "언제까지 안 했다고 거짓말하는지, 두 눈 뜨고 지켜보겠다. 꼭 살아서 제대로 사죄 받고 말겠다."

할머니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시민 모임까지 결성해 올해로 13년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나누고 있는 송도자 통영거제시민모임 대표도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송 대표는 "제2의 한일협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굴욕적인 합의다. 기존 무라야마, 고노 담화보다 못한 결과물이다"고 반발했다.

이어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10억 엔 출연은 이미 오래전 거론된 사안으로, 이번 합의는 아예 위안부 운동을 할 수 없게끔 했다. 이런 결과를 받으려고 25년 넘게 싸워온 게 아니다"고 토로했다.

경남 창원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 모(84) 할머니도 "죽기 전에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줄 알았는데…"라며 "일본을 대표하는 사람이 직접 사죄하기를 갈망했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서울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8) 할머니도 타결 내용에 대해 "전부 무시하겠다"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생각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성훈·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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