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사이 문제라… 법적 대응 미진 '데이트 폭력'에 우는 여성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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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8시께 부산 서구의 한 주택가 주차장. A(23·여) 씨는 승용차 안에서 연인 B(23) 씨로부터 뺨을 맞았다. 전날 다퉜다 차 안에서 잠이 든 B 씨를 A 씨가 깨우자 다짜고짜 손찌검을 한 것이다. 참다못한 A 씨는 112에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해 사태는 진정됐다.

경찰에 따르면 B 씨는 이전에도 A 씨의 몸을 짓누르고 때리는 등 여러 차례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과거 폭행 건에 대해선 별다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 조사를 받던 두 사람은 원만히 합의를 하고 반나절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경찰은 "연인 사이의 폭행은 신고를 한 뒤 선처를 바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남녀 관계의 일에 경찰이 어떻게 하나하나 다 개입하느냐"고 반문했다.

5년간 연 평균 7천 명 피해
목숨 잃은 경우도 290명
정서적 폭력 상담건수 증가

향후 가정폭력까지 이어져
관련규정 마련 등 대책 필요


지난달 11일 금정구의 한 대학교 정문 앞. 사이 좋게 손을 잡고 걸어가던 연인 C(24) 씨와 D(21·여) 씨는 대화 도중 말싸움이 시작돼 폭행으로 이어졌다. 서로 머리카락을 붙잡는 등 폭행이 이어지자 주변을 지나가던 E 씨가 이를 말렸다. 하지만 D 씨는 말리는 E 씨에게 오히려 화를 냈고, 주변 대학생들은 황당해하며 자리를 떠야 했다.

데이트 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경찰의 소극적인 대처와 법령 미비, 이별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사법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피해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데이트 폭력 관련한 피해 사례는 최근 5년 동안 연 평균 7천 명 안팎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 기간 연인의 폭행 등으로 심지어 목숨을 잃은 사람도 290명에 이른다.

과거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던 가정폭력의 경우 점차 엄격한 법의 심판을 받는 추세다. 3년 이내 2회 이상 가정폭력을 행사하면 피해자와 합의하더라도 재판에 회부돼 처벌을 받는 '삼진아웃제'가 2014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연인 사이 데이트 폭력에는 이 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체적인 폭력뿐만 정서적인 폭력도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부산여성의전화 부설 성·가정폭력상담센터 한 상담원은 "최근 들어 헤어진 연인이 사귀던 시절 비밀스러운 사진이나 동영상을 SNS에 올리겠다는공갈과 협박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의 상담문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부산여성의전화가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82명 중 공갈과 협박 등 정서적인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196명에 달했다.

배은하 성·가정폭력상담센터장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은 '더 큰 폭력을 해도 된다'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고, 방어적인 성향의 사람은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폭력에 수긍하게 된다"며 "연인 시절 폭력이 결혼 후 가정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둘을 아우르는 관련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배 센터장은 또 "이별을 하면 더 큰 폭력을 할까 두려워 참다가 폭력의 수위가 높아진다"면서 "피해를 당하면 상담을 받거나 신고를 하고, 주변에 꼭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 피해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주변의 협조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헤어지면 된다"거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말보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현실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지난 3월 여자친구를 네 시간 동안 폭행하고 감금한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 사건의 경우 여자 친구가 폭행 사실을 학교에 알리고 강의실 분리를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사적인 일로 여겨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결국 가해자의 2·3차 폭행으로 이어졌다. 피해자 분리 조치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조소희 기자 s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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