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배은망덕
/정희준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방황 끝에 가출을 하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어딜까. 부산이다. 가 본 적도 없지만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 그게 부산이다. 이렇듯 부산은 '로망의 도시'다.
그런데 최근 부산의 모습은 꽤 허망하다. 침체의 길로 또박또박 걸어 들어간 부산시는 지금 거의 모든 경제·생활지표에서 바닥을 헤매고 있다. 시는 계속해서 무슨 '중심도시', '국제도시'가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우리는 그런 구호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묵묵하게 부산을 중심도시, 국제도시로 만들어 준 것이 있다. 바로 부산국제영화제이다. 부산이 추락을 거듭할 때 부산의 활력을 홀로 외로이 책임진 것은 영화제였다.
부산을 세계에 알렸으니 영화제는 부산의 자존심이요, 올해에만 무려 23만 명을 부산으로 불러 모았으니 부산의 생계를 책임져 준 것도 영화제였다.
지금도 카메라를 메고 구도심과 바닷가를 제집처럼 다니는 여행객들은 모두 영화제가 지난 20년간 뿌린 씨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은 경이적이다. 국내외 많은 단체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벤치마킹한다. 그런데 정작 부산시야말로 영화제를 모델로 삼아 그 성공 노하우를 배웠어야 했다.
최고의 전문성으로 무장한 집행부,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사무처 직원들, 배우려는 자세와 의욕이 넘치는 자원봉사자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바닷가 작은 행사'였던 영화제를 대한민국 문화사에 길이 남을 역사로 일궈 낸 그 과정을 부산시가 배웠더라면 지금 부산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11일 부산시는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감사원 감사에서 회계집행 허위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 묘하다.
첫째, 다른 단체 감사에서는 억대의 횡령과 부정이 있었어도 시정요구나 관련자 징계 등 행정처분이 고작인데 유독 부산국제영화제만 검찰 고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영화제 조직위에 따르면 문제가 된 협찬금 중개수수료 지급은 관행이고 부산시도 이를 알았다고 한다. 또 100억 원이 훌쩍 넘는 영화제 예산 중 문제가 된 액수는 크지 않았음에도 부산시가 직접 고발했다. 도대체 부산시는 아군인가 적군인가.
셋째, 부산시는 위원장이 물러난다면 고발하지 않을 수 있다며 여러 차례 직간접적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한 것에 대한'명백한 보복'이다.
'문화융성'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앞서갔던 DJ정부 때의 문화정책 기조는 간단하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였다.
전임 허남식 시장 때도 한진중공업 관련 영화가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허 시장의 결론도 "알아서 하라"였고 결국 상영됐다.
지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제들은 모두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영화제다. 정치적 검열이 작동하는 순간 영화제는 관변 행사가 되고 2류가 된다. 아시아에서도 2류였던 '박스컵 국제축구대회'처럼 말이다.
만약 검찰 고발을 앞세운 사퇴 압력이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지금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도 없지만 부산시가 지난 20년간 부산을 먹여 살리고 부산의 자존심을 세워 준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렇게 함부로 대할 자격은 더더욱 없다. 남으로부터 은덕을 입었음에도 은혜에 보답은커녕 원수로 갚아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