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고임표 편집감독"시청자 외면 '뻐꾸기' 대사는 바로 가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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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룡이 나르샤'의 고임표 편집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고임표 편집실'에서 사진 촬영 포즈를 취하고 있다. BS투데이 강민지 기자

"대본에 충실하게 편집하지만, 시청자들이 재미없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가위질을 하는 편이죠."

지난 10월 5일 첫 방영된 이후 11주 연속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고임표(53) 편집감독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편집 철학'을 이같이 털어놓는다. 장안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 드라마는 이방원(유아인)을 중심으로 한 여섯 인물의 야망과 성공담을 다룬 팩션 사극이다.

분량 넘쳐도 정도전 설명은 적게
이방원에 도움 안 되는 장면 잘라

매번 새로운 이야기·배우 접해
힘들지만 지루하지 않은 게 매력

■정치 이야기에 멜로와 무협 버무려내


50부작으로 '대하드라마'급인 '육룡이 나르샤'는 작가 두 명이 대본을 집필 중인데 신경수 PD가 찍어오는 현장 분량은 늘 넘친다. 편집 감독으로 '자식' 같은 촬영분을 잘라내느라 밤샘 작업이 연일 이어져 체력적으로 지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드라마 편집의 기본은 '대본'"이라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너무 설명적이라든가 어려운 용어 등 시청하는 데 도움이 안되는 소위 '뻐꾸기' 대사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잘라내고 있어요."

극의 중심인 이방원을 집중 부각시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장점. 그가 전술을 짜고 계책을 세우는 등 정도전(김명민)에 버금가는 책략가로 묘사하는 것이다. 고 감독은 "촬영 분량이 넘쳐도 정도전에 대한 설명이 길거나 이방원에 도움이 안 되는 장면들은 아낌없이 잘라낸다"고 설명한 뒤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려고 앞서 나온 장면을 뒤에 다시 등장시키는 것도 지양하고 있다"고 곁들인다.

최근에는 극 중 길태미(박혁권)의 죽음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길태미가 최후를 맞자 온라인에서 그를 아쉬워하는 글들이 넘쳐난 것.

고 감독도 "드라마가 길태미 덕을 많이 봤는데 그가 죽어야 이야기가 진행되니 어쩔 수 없다"고 아쉬움을 달랬다.

그는 그러면서 이번 드라마를 통해 은연중 새로운 편집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그간 영화나 드라마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이미지 라인'을 넘지 않는 것이 금기였는데 이를 '육룡이 나르샤'가 깼다"며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정치 이야기에 멜로와 무협을 적절히 교차한 편집을 하고 있으니 드라마가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갖게 했다.

■올해로 35년간 충무로에서 필름 편집

지난 1981년 영화편집으로 입문한 고 감독은 올해로 35년간 충무로에서 필름 편집으로 잔뼈가 굵었다.

1991년 MBC에 입사해 잠시 드라마 쪽으로 외도를 했다가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고임표 편집실'을 차리고 다시 영화계로 들어왔다. 복귀 후 첫 작품이 '마지막 방위'였는데 이는 한국영화 디지털편집 1호다. 베테랑인 만큼 상복도 따랐다. 최민수 정우성 주연의 '유령'(1999)으로 대종상, 정재영 박해일의 '이끼'(2010)로 춘사영화제에서 편집상을 받았다.

충무로에서 고 감독을 거론할 때 강우석 감독과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한 작품은 '공공의 적 1'(2002)이지만 이보다 약 10년 전 강 감독의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정설. 사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면 이 영화 엔딩크레딧 편집에는 '김현'이 올라가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고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원래 그분이 영화 편집을 맡았는데 갑자기 큰 수술을 받아서 일을 못 하게 됐어요. 결국 제가 편집을 죄다 했지만 크레딧은 '김현'으로 제가 양보를 했죠."

이 영화는 그해 대종상 편집상을 받았는데, 강 감독은 이때부터 "고임표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좋다"라며 호감을 갖게 됐고 훗날 7편의 영화의 편집을 맡겼다.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육룡이 나르샤'의 연출을 맡은 신 PD와 고 감독은 이번 드라마 이전에는 전혀 모르는 사이라는 것. 드라마 편집에 앞서 고 감독은 강우석 감독의 신작을 위해 '대기 중'이었는데 신 PD가 느닷없이 동참을 제의해왔고 강 감독의 양해하에 '육룡이 나르샤'에 둘이 의기투합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35년 한길을 달려온 편집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들려준다. "힘들긴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아요. 매번 새로운 이야기와 배우를 접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죠."

BS투데이 김상혁 기자 bstoda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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