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의 세상 속으로] 응답하라, '가요의 도시'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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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원 논설위원

지나가다 보면 늘 안타까운 생각이 고개를 드는 곳이 있다. 아, 라는 수식어부터 먼저 앞세우고 기억되는 보림극장이 바로 그곳이다. 영화를 상영하고 쇼를 상연했던 보림극장은 무대와 객석을 갖췄다는 점에서 영화관보다는 극장(劇場)이라는 이름이 제격이다. 이곳 보림극장이 누렸던 화려한 과거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거리에서 바라다보이는 건물의 간판에서다. 보림극장 건물 옆에는 '별들의 고향' '저 하늘에도 슬픔이' '절찬상영'이라는 간판이, 앞에는 '쇼-나훈아의 꿈' '남진 리사이틀' '하춘화 리사이틀'이라는 간판이 옛 영화(榮華)를 웅변한다.

이 간판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한때 보림극장이 다시 문을 연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간판은 간판으로 그쳤다. 단지 보림극장이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것만 하더라도 대단한 일 아니냐고 자위할 수도 있겠다. 삶의 기억과 추억이 깡그리 사라져 버린 장소가 부산에는 한둘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남포동에 있던 보림백화점 2층에서 1955년 개관한 보림극장은 1968년 조양직물 공장 땅을 사들여 범일동 시대를 열었다. 삼일극장, 삼성극장과 함께 '범일동 극장 트리오'로 불리며 한때 잘나갔지만, 남포동 극장가 중심의 영화 배급 탓에 영화관으로서의 입지가 좁아졌다. 1970년대부터는 나훈아, 남진, 하춘화 등의 쇼 무대가 잇따라 마련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 나갔다.

보림극장 지날 때면 옛 간판 눈길
부산 대중문화의 상징성 살려야

한대수, 크리스마스 콘서트 여는
경주 대중음악박물관 이목 쏠려

수많은 부산 노래의 안식처는?
가요박물관·노래비 서둘러야


'아, 보림극장'이라는 생각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든 것은 부산 출신으로 '한국 포크록의 전설'인 가수 한대수(67)의 공연 소식 때문이었다. 1974년 '물 좀 주소'와 '행복의 나라로'가 담긴 기념비적인 앨범 '멀고 먼 길'을 내면서 한국 가요계에 충격을 준 그가 데뷔 40주년이 지난 이번 크리스마스에 경주에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마련하겠다는 소식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대의 대중음악박물관에서 나의 음악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 왔던 가장 이상적인 피날레"라는 것이 그의 변이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것은 와전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내년 봄 미국 뉴욕으로의 이사를 앞두고 마지막 공연 장소로 결정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 이목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경주 보문단지에 있는 지하 1층, 지상 3층(층당 1천㎡) 규모의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올 4월 개관했다. 부산에서 사업을 일으킨 한 독지가가 시대의 아픔을 같이한 대중음악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자라나는 젊은 세대가 알았으면 하는 염원으로 세웠다고 한다. 대중가요 음반 5만여 점을 비롯하여 악보, 무대의상, 축음기 등 7만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은 개관 반년 만에 정부 공인 1종 박물관으로 초고속 승진(?)하기도 했다. 소장품의 가치를 널리 인정받아 박물관이 많다는 경주에서 1945년 설립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이어 두 번째로 1종 박물관의 영예를 차지했다.

대중음악박물관이 자리하기에는 경주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면서 보림극장에 이런 박물관이 들어섰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부산에서 1960년대 이후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보림극장이 부산가요박물관이 되어 과거의 추억을 헤아리면서 공연도 열리는 공간으로 거듭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비록 극장 외관에는 쇼와 영화를 알리는 간판이 서 있지만, 내부는 대형마트로 변해 노래 좋아하던 삼촌 이모들 따라 나훈아, 남진 쇼의 열기에 젖어들었던 옛 기억을 반추하기에는 쉽지 않은 공간이 된 것이다.

지난 13일 오후 부산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의미 있는 무대가 마련됐다. 70여 명의 시민이 도란도란 모인 가운데 막 오른 공연은 '노래 속의 부산, 부산의 노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가 아코디언과 기타 반주에 맞춰 부산의 노래와 그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연락선은 떠난다' '울며 헤진 부산항'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추억의 영도다리' '용두산 엘레지'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날 공연에서는 부산역 앞에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래비를 세우자는 주장을 해 왔지만, 번번이 좌절됐다는 아쉬움도 묻어 나왔다. 허공에 산산이 흩어진 부산의 노래들은 언제쯤이면 부산가요박물관 같은 제 집을 찾아 마음껏 회포를 풀 것인가.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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