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앞모습 뒷모습
/임석준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원장
한 결혼정보회사 직원에 의하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돌싱남'(돌아온 싱글 남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전처를 악몽처럼 기억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전처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부류이다. 흥미로운 점은 전처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은 돌싱남의 대다수는 이혼을 통해 부인과 헤어진 반면, 전처를 잊지 못하는 돌싱남은 부인과 사별한 경우라고 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사람의 '앞모습'(처음 모습)보다는 '뒷모습'(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이리라. 싫어서 헤어진 이혼남에게 전처의 마지막 모습은 막장드라마의 소리 지르는 여주인공처럼 보였을 것이고, 사별을 한 사람에게 부인의 마지막 모습은 고통 속에서 이별하는 영화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순애보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경험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이 확연히 다르다. 또한 좋은 경험 후 나쁜 경험을 하거나 혹은 나쁜 경험 후 좋은 경험을 하는 등 '경험의 순서'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기억은 현상에 매몰된 착시
경험의 순서가 중요한 작용
임기 초와 말 지지율 차이 큰 YS
서거 계기 재평가 움직임 확산
박근혜정부도 뒷모습 관리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이러한 기억의 상대성은 행동경제학을 개척한 다니엘 카네만의 '차가운 물에 손 담그기'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매우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게 한 후 그 경험이 어땠는지 묻는 실험을 했다. 한 조건은 14도의 찬물에 손을 60초 담그는 것으로 끝난다. 다른 조건에서는 14도의 찬물에 60초 담근 다음, 물 온도를 올려 15도의 물에 30초 더 담그고 있도록 했다. 이후 피실험자에게 두 경험을 비교하라고 했는데, 놀랍게도 90초 동안 찬물에 손을 담그고 있었던 경험이 60초 동안 담갔던 경험보다 훨씬 편안했다고 했다.
14도나 15도나 손이 시리긴 마찬가지인데 30초나 더 고통을 견뎌야 했던 조건이 왜 덜 고통스럽게 느껴졌을까. 그것은 90초짜리 실험이 객관적으로는 더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의 마무리가 15도에서 약간 좋게 끝났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즉, 전체 경험에 대한 평가는 얼마 동안 고통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끝날 때의 고통 수준의 영향, 즉 '뒷모습'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경험을 마무리하는가에 따라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기억되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친구들과 단체 여행을 가거나, 직장에서 회의나 회식을 하거나, 심지어 라이벌과 경쟁을 벌일 때에도 그 마무리는 좋은 인상으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 나라의 국민도 그들이 지도자를 경험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은 확연히 달라진다.
과거 설문조사를 보면 김영삼 전 대통령(YS)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012년 공신력 있는 패널조사에 의하면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일을 잘한 대통령은 박정희(51.1%)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였고, 김대중(19.1%), 노무현(17.1%)이 2, 3위를 차지했다. 그 뒤로는 전두환(2.2%), 이명박(2.0%) 대통령이 낮은 평가를 받았고, 최악의 평가를 받은 대통령은 이승만(0.9%), 김영삼(0.6%), 노태우(0.2%) 순이었다.
다른 조사기관의 '역대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를 보면 YS는 1년 차 지지율이 무려 70∼80%를 상회했으나 퇴임할 시기 긍정 평가는 10% 미만의 한 자릿수로, 임기 초 지지율과 임기 말 지지율이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인 대통령이었다.
YS가 이런 평가를 받는 이유는 국민들이 민주화 투쟁, 금융실명제 실시,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하나회 척결 등 그의 '앞모습'을 기억하기보다는 외환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마지막의 '뒷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최근 서거를 계기로 'YS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YS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YS의 죽음을 통해 많은 사람이 비로소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민주주의 퇴행' 등이 우리의 당면한 문제라고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기억은 본질보다는 현상에 매몰된 착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왕이면 좋은 마지막 모습을 남기려 하는가 보다. 박근혜정부도 뒷모습 관리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