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달려라 101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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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가 없었다면 한국에서 산업화는 불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 시내버스는 대중교통의 총아로 개발기술을 부추겼고, 만들어진 차량은 다시 산업역군들을 태워 날랐다.

처음으로 버스가 운행된 곳은 대구였다. 1920년 대구에서 일본인에 의해 버스 4대가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일본에서 수입한 버스였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마이크로 버스와 미군 트럭을 개조한 버스가 시내를 활보하였다. 버스 수요가 늘자 하동환자동차와 신진공업사도 버스 생산에 뛰어 들었다. 하동환자동차는 지금의 쌍용자동차, 신진공업사는 대우버스의 모태다. 제대로 된 버스는 1969년 현대자동차가 시내버스를 제작하면서 등장하였다. 1970년대 산업화의 바람이 불면서 버스 수요가 폭발하였다. 출퇴근하는 노동자와 등하교 하는 학생들의 발이 되어 주었다. 당시 버스는 가운데에 문이 하나만 달려 있었다. 안내양은 슈퍼우먼이었다. 토큰 받기, 잔돈 거스르기, 손님 밀어넣기는 안내양의 몫이었다.

대구에서 버스 운행이 시작된 지 95년이 흘렀다. 지난 28일 부산 기장에서 버스 한 대가 출발하였다. 오전 5시 30분 새벽 공기를 가르며 광안대교로 향했다. 노선도를 보니 해안일주도로 직행노선이라고 적혀 있다. 시내버스인가, 관광버스인가 헷갈린다. 광안대교~남구~부산항대교~영도~남항대교~장림~을숙도대교가 기본 노선이다. 부산의 항구를 한 번의 탑승으로 다 둘러보는 관광버스 노선이나 다름없다. SNS에선 이미 '힐링버스' '명품 관광버스' '최상의 데이트 코스'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 현재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데 승객이 늘어나면 10~15분대로 조정할 계획이다. 투입된 차량은 모두 6대로 현대차가 제조한 리무진 관광버스급이다.

이제 부산 사람들은 1천800원에 시내버스 여행을 즐기게 됐다. 시내버스는 승용차와 KTX 등이 흉내 낼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비용도 만만찮게 드는 데다 운전에 집중해야 하는 게 승용차 여행이다. 한편 KTX의 경우 창밖을 바라보자니 어지럽고, 대화를 하는 건 더더욱 사절이다. 이에 반해 타자들의 삶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탄성을 지르는 게 허용되는 느린 여행이 있다. 바로 1011번 버스 여행이다. 시내버스와 여행의 조합, 산업화 시절을 건너온 기성세대에겐 새삼스럽다. 달려라, 1011번 버스! 이상민 논설위원 ye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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