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호래기 배낚시] 손맛보다 먹는 맛, 바로 잡아서 한입에 '호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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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일 보해낚시백화점 사장이 큼지막한 호래기를 낚아 올린 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찬바람 부는 겨울철이 호래기 낚시에 좋은 시기다.

제법 찬 바람이 분다. 이때쯤이면 낚시꾼들의 마음을 슬금슬금 움직이게 만드는 게 있다. 호래기다. 호래기 낚시는 보통 겨울철에 한다. 산란을 앞두고 호래기들이 연안에서 활발한 먹이활동을 벌이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낚을 수 있다.

반원니꼴뚜기가 정확한 명칭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호래기'의 친근함을 따라갈 수 없다. 하필 호래기일까? 호래기는 잡은 즉시 내장을 제거하고 회로 만들어 그대로 호로록 삼키는 게 가장 맛난다. 그렇게 '호로록' 소리 내며 먹는 어종이라고 호래기가 아닐까? 순전히 혼자 하는 짐작이다. 아무튼 이 즈음 호래기는 맛있다.

산란 앞둔 겨울철 먹이활동
창원 마산합포구 원전항 인기
내장 제거하고 회로 만들어
짬뽕 일품·보랏빛 떡국 국물도
꼬리부터 꿴 민물새우 미끼로
갑오징어·주꾸미는 덤

■물 좋고 바람 적어 낚시하기 좋은 원전항


지난 19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에 있는 원전항을 찾았다. 원전항은 호래기 낚시의 명소로 잘 알려진 곳이다.

원전항에서 10년째 선상낚시업을 하는 하는 이가 있다. 10t급 낚시 전용선 '진영호'(010-4224-3419)의 손진성(35) 선장이다. 구산면 토박이로, 14세 때부터 낚시꾼을 태워 나르는 배를 직접 운전했을 정도다. 군 복무도 해경으로 마쳤다. 그만큼 원전항 바다와 배를 잘 안다. 그는 "낚시의 조건을 잘 알고 그 조건을 손님들에게 잘 만들어 제공해 주는 게 선상낚시 선장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는 해마다 이맘때 호래기 낚시를 시작해 이듬해 1월 말까지 이어간다. 원전항에 호래기 낚시꾼들이 몰리는 이유? 손 선장은 "일단 물이 좋고, 또 포구가 겨울바람이 닿지 않는 형태라 낚시 조건이 좋다"고 답했다.

■족족 걸려드는 진영호 선장의 비밀 포인트

이미 어둠이 까맣게 내려앉은 오후 6시. 호래기 잡으러 온 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전날엔 비바람이 세차서 배를 띄우지 못했다. 이날도 흐린 날씨라 진영호에 오른 조사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손 선장을 포함해 모두 10명.

원전항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보해낚시백화점(055-222-5251) 이준일(34) 사장도 일행에 끼었다. 손 선장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함께 낚시 포인트도 개발하는 등 서로 도와가며 원전항을 지키고 있다.

배는 출발도 안했는데, 꾼들은 낚싯대부터 드리운다. 뭘 벌써 저러나 싶은데, 어라! 호래기 몇 마리가 경남 김해에서 온 주순관(57) 씨의 낚싯줄에 매달려 올라온다. 조금 있다, 슬그머니 주 씨의 통을 보니, 아무것도 없다. "벌써 호로록 먹어버렸지"란다. 아무래도 호로록 먹기 좋다고 호래기인가보다.

오후 6시 30분 출발. 진영호는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깜깜한 밤바다로 들어갔다. 10분이 채 못 돼 손 선장의 비밀(?) 포인트에 도착했다. 쇠섬 앞 바다. 수심이 5~7m 쯤 된다. 그런데, 이런! 이미 다른 낚싯배가 불을 밝히고 자리 잡고 있다. 손 선장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다행히 조금 있으니 그 배가 자리를 비켜준다. 자기 자리가 아닌 걸 알았나 보다.

집어등이 진영호 주위를 하얗게 밝히고, 꾼들은 낚싯줄을 기술껏 멀리 던져 보낸다. 미끼는 민물새우다. 민물새우를 꼬리부터 꿰어 머리가 위로 오도록 하면 새우 눈의 인광을 보고 호래기가 반응하는 식이다.

역시, 손 선장의 비밀 포인트다! 던지는 족족 호래기들이 쌍으로 걸려 올라온다. 간혹 갑오징어도 심심찮게 보인다. 꾼들의 표정이 밝다.

하지만 오후 8시 30분이 지나자 호래기들의 입질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준일 사장은 "물이 빠져 나간 탓"이라고 했다. 물길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9시. 가랑비까지 흩뿌리기 시작한다. 난감한 상황. 손 선장은 결단을 내린다. 장소를 옮기자!

■호래기 국물에선 고소한 향이 난다

옮기길 잘했다! 호래기 걷어 올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큰 놈들은 길이가 한 뼘은 족히 넘는다. 올해로 낚시 2년차라는 백운주(42) 씨는 호래기 낚시의 묘미를 이렇게 밝혔다.

"일단 많이 잡을 수 있고요, 또 크기가 작으니 집으로 가져 가기도 좋아요. 무엇보다 요리해 먹기 편해요. 깨끗이 씻어 생으로 먹어도 좋구요, 데쳐서 초고추장 찍어 먹어도 좋아요. 호래기를 넣어 떡국을 끓이면 국물이 밝은 보랏빛이 나요. 그 맛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요컨대, 호래기 낚시는 손맛보다는 먹는 맛이라는 것이다.

밤 11시가 넘어 가면서 출출해진다. 손 선장이 금방 잡은 호래기를 넣어 짬뽕을 만들어 보겠다며 일어선다. 예전에는 라면도 넣었는데,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 이젠 넣지 않는다. 쌀쌀한 날씨에 몸을 움츠리고 있었는데, 얼큰하고 뜨거운 호래기 짬뽕 한 그릇에 모두들 훈기를 되찾았다. 국물에선 호래기 특유의 고소한 향이 났고, 호래기는 졸깃하게 씹혔다.

■날밤 새워도 식구에게 구박 안 받는 낚시

여전히 가랑비가 오락가락. 하지만 꾼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대로 호래기 손길을 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저마다 작은 양동이 하나씩은 가득 채웠다. 마릿수로는 100~150여 마리. 이준일 사장은 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다.

원전항 인근 바다서 잡은 호래기들. 때깔이 좋다.
"예전에 많이 잡을 때는 양동이로는 다 담을 수 없어 배 바닥에 그냥 쏟아부었어요. 낚시를 마칠 때 쯤이면 발 아래가 온통 호래기였습니다."

오전 1시 30분. 손 선장은 철수를 선언했다. 아쉽지만 채비를 걷을 수밖에. 손 선장은 손님들의 조과를 일일히 확인하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둔다.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려는 것이다.

그런데 선상 호래기 낚시는 처음이라는 강 모 씨는 다른 이의 절반도 잡지 못했다. 호래기 낚시가 쉽다고 하지만 그래도 경험과 기술에 따라 손끝 실력은 무시할 수 없는 듯!

호래기 낚시는 부수입도 짭짤하다. 호래기 외에 갑오징어, 주꾸미도 꽤 낚이기 때문이다. 창원에 직장이 있는 최성환(35) 씨는 이날 아예 호래기가 아니라 갑오징어 잡으러 왔다고 했다. 이래저래, 날밤 새우고 집에 들어가도 식구들로부터 구박은 받지 않는 게 호래기 낚시다.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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