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가 낳은 민주화 巨山 스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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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시대 몸으로 연 '승부사' 22일 영면

1987년 부산 수영만 매립지에 모인 수많은 지지자들은 "대통령 김영삼"을 연호했다. 지지자의 꿈은 5년 뒤 비로소 이뤄졌지만 첫 문민정부의 공과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아직도 엇갈린다. 국민의 애증을 뒤로한 채 한국 민주화의 거목 YS는 영면에 들었다. 부산일보DB

대도무문(大道無門).

정도를 가면 거칠 것이 없다던 거산(巨山)도 역사 속에서는 저물 수밖에 없었다.

김영삼 前 대통령 서거 (1927~2015)

문민시대 몸으로 연 '승부사'
22일 0시 22분 서울대병원서
패혈증·급성심부전으로 영면
박 대통령 "깊은 애도 표한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지만 자갈치 아지매들에게는 '총재님'으로 더 친숙한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

최연소(만 25세)·최다선(9선) 국회의원이면서 평생을 이어온 민주화 투쟁으로 문민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던, 부산·경남(PK)이 낳은 거물 정치인.

3당 합당을 통한 정권쟁취, 임기 말 외환위기와 친인척 비리 등으로 한때 정치적 업적이 폄훼되기도 했지만 금융실명제 실시, 공직자 재산공개, 군내 사조직 척결 등 오늘날 대한민국의 소중한 성취는 YS의 과감한 돌파력과 결단이 없었다면 훨씬 뒤로 미뤄졌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쉼없이 달려왔고, 현대 정치사의 영욕을 고스란히 간직한 YS.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달고 다녔기에 부산·경남 사람들의 애증이 교차했던, 또 굵직한 업적 뒤에 숨길 수 없었던 과오가 있었기에 더 사랑했던 첫 문민 대통령 YS가 역사 속에 영원히 잠들었다.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향년 88세로 서거했다.

YS는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와 어머니 박부연의 외아들로 태어나 장목소학교,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 3대 민의원(경남 거제)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돼 제 5·6·7·8·9·10·13·14대 국회의원까지 9선 의원을 지냈는데 이 가운데 7번을 부산에서 당선됐다.

1970~80년대 야당 지도자로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는 부산·경남(PK)을 기반으로 군사정권과 맞섰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치열한 권력 투쟁 때는 자신의 든든한 정치적 기반이던 부산과 마산, 거제 등 PK에 머물며 '벼랑 끝 승부수'를 던졌다.

1992년 대선에서는 필생의 라이벌인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마침내 군정을 종식하고 '문민시대'를 열었다.

 '뼛속까지 부산 사람'인 YS의 대통령 당선에 부산은 환호했고 새로운 부산시대에 대한 열망을 한껏 터뜨렸다.

YS는 22일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긴급 브리핑에서 밝혔다.

고인은 지난 19일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입원했으며,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됐다. 서거 당시 고인의 곁에는 차남 현철씨 등 가족이 자리해 임종했으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곁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YS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23일 새벽 귀국하는 박 대통령은 적절한 시점에 빈소를 직접 방문해 조문할 예정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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