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추모] 영욕의 역사 함께한 사람들 '내가 기억하는 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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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엔 거침없이 항거… 주변엔 한없이 따뜻했던 분"

1999년 9월 모친 빈소를 찾은 YS와 인사하는 홍인길 전 수석. 부산일보DB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부산지역에서 발탁해 중앙 무대에 세운 정치인은 셀 수 없이 많다.하지만 YS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영욕의 역사를 같이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정리를 나눈 정치인은 많지 않다. YS 대통령 재임 시절 '왕수석'으로 불리던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정치적 동반자 문정수 전 부산시장, 영원한 YS맨 김종순 새누리당 부산시당 상임고문, YS의 대변인 박종웅 전 의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역사가 YS를 다시 평가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남고 동문 후배들도 고인을 추도했다.

"군부 정치 척결·금융실명제 등 큰 업적"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YS 서거가 알려진 22일 홍 전 수석은 "민주화의 큰 별이 졌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억장이 무너졌다"며 "불의에는 뜻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분이셨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다정다감한 분이셨다"고 떠올렸다.

그는 "YS는 우리나라 민주화에 크고 많은 족적을 남긴 분"이라며 "군부의 정치 개입을 막았고 금융실명제를 전격적으로 시행한 게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임 중 IMF 사태가 있었지만, 이는 세계적인 경제 흐름의 여파의 하나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6개월 전 YS를 뵈었을 때 건강이 상당이 나빠 보였다"던 홍 전 수석은 "건강이 좋지 않아 최근 정치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YS가 최근 정치권 상황을 봤다면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안타까워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홍 전 수석은 상도동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1979년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 비서를 맡으면서 YS와 첫 인연을 맺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청와대 총무수석비서관으로 있었으며 1996년 부산 서구에서 제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가 정계에서 은퇴, 현재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어이구 어이구…" 설움에 겨워 말 못해

·최형우 전 내무장관

2008년 10월 YS 부친 김홍조 옹 장례식장을 찾은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부산일보DB
상도동계 1세대'로 불리는 최형우 전 내무장관은 검은 상복 차림으로 22일 오전 11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그는 장례식장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오열을 멈추지 못했다.

주변의 부축으로 가까스로 울음을 삼키면서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YS의 빈소로 이어지는 복도를 힘겹게 걸어 들어왔다.

최 전 장관은 빈소에 놓인 YS의 영정사진을 보고 끝내 바닥에 주저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어이구…어이구…"를 반복하며 흐느껴 울었다.

최 전 장관은 주위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빈소 안에 마련된 내실로 들어가 손명순 여사를 따로 찾아 위로의 뜻을 전했다.

최 전 장관은 고 김동영 의원과 더불어 민주화 운동시절 '좌(左)동영 우(右)형우'라 불리며 YS를 측근에서 보좌한 민주화 동지였고, 민주당 사무총장, 내무장관 등을 지내며 사실상 문민정부의 '2인자'로 지냈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배지 못 달아줘 미안해하던 모습 선해"

·김종순 새누리당 부산시당 상임고문

 
1988년 5월 국회의원 합동 연설회에서 YS와 얘기를 나누는 김종순 고문. 부산일보DB
김 고문은 "개인적으로 친형님보다 더 가까운 분이 영면하셔서 너무나도 슬프다. 국가적으로도 큰 별이 없어진 것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좋은 곳에 가셨을 것"이라면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부산은 YS의 정치적 고향이지만, 그에 대한 부산 사람들의 평가는 야박해 보인다"면서 " 하나회 척결을 통한 군정종식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금융실명제 실시는 역사에서 재평가를 꼭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힘들었을 때가 생각난다고 했다. "군사독재에 대행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1980년 정치화법에 묶여 몸이 자유롭지 못했던 때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때 부산선대위본부장을 맡아 함께 고생했던 때가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YS가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 자유당을 탈당하고 부산 서구에 올라와 정치도전을 시작할 때 김 고문은 같은 지역, 같은 경남고 출신 선배라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돕기 시작해 50여 년을 변함없이 신의를 지켰다. YS가 팔순 잔치 때 김 고문을 불러 "배지 한 번 못 달아줘서 미안하다"며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앉힌 이야기는 정계에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다.

"센텀·신항 개발 등 아낌없이 지원"

·문정수 전 부산시장
1997년 11월 부산신항만 건설 기공식에 참석한 YS와 문정수 전 시장. 부산일보DB
YS의 오랜 정치적 동지인 문 전 시장은 "20대에 만나서 오래 모셨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니 큰 기둥을 잃은 느낌이다"고 아픈 속을 내비쳤다.

YS기념도서관 건립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문 전 시장은 YS의 청렴성에 새삼 놀랐다고 한다. "YS의 재산 50억 원을 사회에 환원했는데, YS가 모은 재산은 집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재산 대부분이 선친과 조부에게 물려받는 것이었습니다. "

이어 문 전 시장은 "기득권의 방해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YS가 밀어부친 금융실명제 등 개혁적 조치는 YS의 정치적 진정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훗날 크게 평가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전 시장은 YS가 재임하면서 신항 개발, 센텀시티 부지 확보 , 지하철 3호선 건설 등 부산 발전을 앞당겼다고 회상했다. 그는 "YS의 부산 사랑은 대단했다. 야당 도시로 많이 낙후된 것에 가슴 아파했던 YS가 재임하면서 부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YS의 입' 박종웅 전 의원은 본보의 연락에 답하지 않고, 문자로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조금 말을 아끼려고 한다"고 전했다.

"고교 후배들에게 자신감과 희망 줘"

·경남고 동문들 반응

YS 서거 소식에 모교인 경남고 동문들도 안타까움과 함께 애도를 표했다.

오거돈 대한민국해양연맹 총재(경남고 21회·전 해양수산부 장관)는 22일 "우리나라 민주화의 거목이셨던 김 전 대통령은 경남고 후배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준 분"이라며 "거제 출신으로 바다에 대한 애정이 많아 처음으로 해양수산부를 만드셨던 주역이었다"고 평가했다.

조경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40회)은 "제가 부산에서 첫 야당 의원이 되고 상도동에 세배를 드리러 갔을 때 경남고 후배가 큰 일을 이룬 것에 대해 칭찬을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김 전 대통령은 누구도 할 수 없었던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도입 등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경남고는 김영삼 전 대통령(3회)을 비롯해 김택수(1회·전 공화당 원내총무·작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24회),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25회), 서병수 부산시장(25회), 박희태 새누리당 상임고문(11회) 등 정치분야를 비롯해 각계각층에 많은 인사를 배출했다.

김수진 기자 ksci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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