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으로 성공' 아메리칸 드림 허구 파헤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능력주의는 허구다 / 스티븐 J 맥나미 외

청년들을 좌절하게 하는 '헬조선'의 해결책은 '능력주의'의 허구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부산일보 DB

학교 수업에 충실해 명문대에 들어갔던 할아버지는 "입시는 전략"이라는 손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성실을 무기로 일가를 이룬 아버지도 취업 안 되는 세상을 탓하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다.

부모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자녀의 지위가 결정된다는 금수저·은수저·동수저 계급론이나 희망 없는 사회를 상징하는 헬조선을 바라보는 시선은 세대 간 차이가 크다. 한국전쟁이라는 지옥을 경험한 세대에게 젊은이들의 불평은 투덜댐일 뿐이고, 희생과 헌신으로 산업화를 일군 이들도 헬조선이란 용어가 불편하다. 힘겨운 20대는 현실을 신랄하고 아프게 통찰한 신조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답답할 뿐이다.

능력만으로 신분 상승 '옛말'
부모 경제·문화적 자본이 좌우

아버지 세대 상향적 계층 이동
20세기 산업구조 개편 급변 탓
진정한 기회 평등 이젠 요원


'능력주의는 허구다'는 미국의 사회학자 두 명이 '아메리칸 드림'이 어떻게 무너지고 소모되어 지는 지를 분석한 책이다. 이민자들에게 기회의 땅이자, 개인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열린 공간인 미국이 어떻게 닫혀가고 있는 지 서술했다.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저자는 '능력주의'와 '능력'을 재정의한다.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해 능력을 키운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에 열렬히 환호했다. 특혜 없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상관 없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제공한다는 논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산업화가 태동할 시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20세기에는 일자리의 유형이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과거에는 비숙련 노동 인력이 농업 경제의 근간이었지만 그들을 위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대신 공장과 사무직 일자리가 늘어났다. 이 시기에 개인이 경험한 상향적인 계층 이동은 개인의 능력 덕분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은 각자 전혀 다른 기회 구조와 맞닥뜨렸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인 변화의 물결에 휩쓸린 사람들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오직 자신의 능력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고 성급하게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아들 세대는 달랐다. 대학졸업장을 소지한 인적 자본은 꾸준히 증가해 온 반면 수요측면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아주 조금 증가했을 뿐이다. 이같은 불균형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이나 교육과 비례하지 않는 일자리를 얻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능력'을 구성하는 요소도 꼼꼼히 살펴본다. 사실, 사회에서 능력을 구성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보다는 교육과 인맥이다. 교육과 인맥을 좌우하는 건 부모의 경제적·문화적 자본이다. 경제적인 격차 뿐만이 아니라. 촘촘하고 튼튼한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형성한 그물망 속에서 배운 세련된 매너와 스타일이 개인의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믿고 있는 능력주의는 노력에 의해 차등적으로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일정한 지위를 갖게 되면 이를 놓치지 않고 자식에게 전해주려는 출세주의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지위에만 강박적으로 집착하거나 나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노골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한국사회에 적용하자면, 명문학군에서 명문대로 이어지는 교육열풍이나, 미국 시민권을 일찌감치따 병역을 회피하는 것 등이다. 출세주의자들의 이런 행동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서열이 매겨지고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현실에서 살아남는 가장 열렬한 반응이기도 하다.
저자는 진정한 기회 평등을 이뤄내고 오직 능력만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양한 조세정책으로 상속재산의 비율을 낮추고, 음식, 의료나 주거같은 삶의 필수 요소들을 다함께 부담하는 것 등이 방안일 수 있다. 무엇보다 능력 없음이 노력하지 않음의 결과가 아니라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면. 많은 게 달라질 수 있다. 스티븐 J 맥나미 외/김현정 옮김/사이/336쪽/1만 5천500원.

조소희 기자 ss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