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도시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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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 동서대 총장

21세기는 도시의 시대이다. 19세기와 20세기가 국가의 시대였다면 말이다.

한 도시의 부가 한 나라를 능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기준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지역내총생산(GRDP)이 태국 전체의 그것과 맞먹는 수준이 되었다. 뉴욕 시의 경우, 광활한 캐나다 전체의 생산량과 비슷하다. 2025년까지 600개 대도시에 의한 생산이 세계총생산(GWP)의 67%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을 정도이다. 바야흐로 도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아닌 도시 돋보여야 선진국
한국은 여전히 중앙집권적

도시가 국가 닮아서는 안 된다
발전 방향도 스스로 결정해야

'도시의 시대' 위상 확보 위한
부산의 구체적 로드맵 절실


대개 국가가 강조되면 대외적으로는 배타적·구별적으로 된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애국심 등이 국가를 상징하는 주요 표현들이다. 또한, 국가가 중심이 되는 나라는 대내적으로 중앙집권적이게 되고, 획일적으로 흐르기 쉽다. 극단적인 국가주의는 독재를 낳게 하고, 느슨한 경우에도 힘의 집중이 일어난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수많은 전쟁이 일어난 것은 국가주의의 팽배가 가지고 온 패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도시를 이야기하면 자연 환경, 삶의 질, 문화 등과 같은 소프트 파워적인 분위기가 강해진다. 도시는 국가에 비해 가깝게 있고, 삶의 터전이라는 정겨움이 있다. 규모가 작은 도시일수록 그 친근감은 더하다. 갈등보다는 매력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도시가 돋보이는 나라는 선진국이고, 중앙 권력이 강조되는 나라는 후진성이 농후하다. 해외 유명 브랜드 제품의 포장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해외 점포가 소재한 도시명이 나열되어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밀라노, 파리, 뉴욕과 같은 매력적인 도시명을 표기함으로써 제품도 덩달아 멋있게 느껴지는 것을 적극 활용한 마케팅 전략일 것이다.

이탈리아는 중앙 정치가 우리 이상으로 혼돈스러운 나라이다. 그러나 지방의 중소 도시들이 강하다. 지방이 국가를 먹여살리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브랜드 제품들이 밀라노나 제노아와 같은 지방 도시에서 만들어져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도시 브랜드가 국가를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지방 사람들은 '국가(중앙)는 세금만 걷어 가는 방해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중앙을 오히려 철저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현지에서 들은 적이 있다.

독일의 경우도 국가보다 지방 도시가 더 힘이 있다. 물론 나치의 권력 집중이 가져다 준 폐해를 뼈저리게 경험한 역사적 교훈이 바탕이 되기는 했지만, 독일은 헌법으로 철저한 권력 분산을 규정하고 있다. 각 지방은 연방 정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을 권한이 보장되어 있을 정도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여전히 국가가 돋보이는 나라이다. 철저히 중앙집권적이고, 도시와 지방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국내적으로는 충돌과 대립의 정치가 난무한다. 대외적으로도 남북 대립, 한·일 갈등, 사드 반입 문제 등과 같은 국가 차원의 뉴스가 세계 매스컴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서울이 한국의 대표적 도시라고는 하나, 서울이라는 도시의 매력이 해외에서 화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도시의 시대를 열어 나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는 그만두어야 한다.

첫째, 도시가 국가를 닮아 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려스럽게도 한국의 도시들은 국가를 점점 닮아 가고 있다. 중앙 정치 담론이 곧바로 지방의 담론이 되어 버린다. 이데올로기와 정당으로 나뉘어 지방의회조차 첨예한 대립의 장으로 변해 가고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소박한' 도시 정치가 사라지니 민생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둘째, 모든 것을 국가에 의존하는 도시는 희망이 없다. 국가 교부금에 목이 매인 도시는 종속형 도시이다. 매년 이맘때면 예산을 확보한답시고 서울로 분주히 오르내리는 시시포스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한 결코 도시의 시대가 열릴 수 없다. 지방 분권을 위한 과감한 권력구조 개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평가가 단지 중앙 예산을 얼마나 더 가져오나에 한정된다면 중앙 의존이라는 쳇바퀴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셋째, 도시의 정체성마저 국가 판단에 맡기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도시 발전의 방향은 전적으로 지역민 스스로의 지혜에서 도출되어야 한다. 한 도시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강점은 지역민이 제일 잘 알고, 이를 잘 발전시켜야만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 인위적인 국가 차원의 교통정리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부산은 이미 도래하고 있는 '도시의 시대'에 걸맞은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구상을 해야 할까. 언제쯤이면 세계 유명 브랜드의 포장지에 'BUSAN'이라는 이름이 'PARIS'와 나란히 표기되는 날이 올까. 다양한 상상력이 바탕이 된 구체적인 로드맵이 절실해 보인다.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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