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소설가의 탐식법] 세계 술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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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수제 맥줏집에서 맥주를 따르고 있다.

이 남자는 주당들의 야망을 몸소 실현시켰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곳의 맛난 음식과 술을 마시고 책까지 낸 것이다. 일본의 사진작가이자 요리연구가인 니시카와 오사무씨의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을 읽다 보면 나의 여행이 초라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저자가 밀라노에 살았던 500여 일 동안 와인을 1천400병 정도 마셨다.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었다는데 저자도 분위기에 맞춰 취하다 보니 코가 빨개지고 체취마저 와인 향이 났다고.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술에 맞는 안주도 빠질 수 없다. 그리스에서는 독한 우조와 함께 구운 문어를 먹고, 미국 텍사스에서는 버번위스키와 살라미를 먹는다. 그는 부산에서 소주와 함께 고래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올해 다녀왔던 두 여행은 이 남자에 미치지 못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술과 음식을 즐기며 돌아다녔다. 2월에는 오사카에 아내와 조카, 조카의 친구와 함께 일주일 동안 다녀왔다.

여자들이 쇼핑을 즐기며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악기 상가를 돌아다녔다. 전자악기를 다 사자 시간이 남아 버렸는데 우연히 들른 수제 맥줏집에서 오사카 맥주 지도를 발견하면서, 오사카 맥주 투어를 해보자고 다짐했다.

내가 만든 룰은 이렇다. 첫째, 결심을 한 그 순간부터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할 때까지 최대한 많은 수제 맥줏집을 방문한다. 둘째, 각 맥줏집마다 맥주는 딱 한 잔 밖에 마시지 않는다. 셋째, 그 증거로 실시간으로 페이스 북에 사진과 장소를 공개한다. 맥주 투어는 일곱 번째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도수가 강하고 향이 진한 아이 피 에이 맥주를 주로 마셨고, 안주는 먹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취해버렸다. 사람들도 페이스북으로 열렬히 응원해주었다. 여자 셋은 술을 전혀 마시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술에 취하면 마음이 조금 느긋해진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여행지에서 움츠려들었던 마음이 열리면서 낯선 사람에게도 말을 걸고, 손짓 발짓을 해 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6월에는 말레이시아의 프렌티안 섬과 페낭에서 한 달을 보냈다. 페낭에서 일주일을 보낸 건 순전히 음식 때문이다. 숙소를 논야 음식(말레이시아에 정착한 중국인의 음식) 전문점에 잡고 거리를 쏘다니면서 음식을 먹었다.

이곳에는 중국과 말레이시아, 인도의 음식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했는데 밤이 되면 거리가 포장마차로 가득 차서 싸고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어볼 수 있었다.

아침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오전에만 문을 연 가게에서 호키엔 미(매운 새우국수)와 달곰한 커피를 마시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집사람은 밀가루 전에 카레를 찍어 먹는 로티 카나이를 좋아했다. 나시 고렝(볶음 국수), 페낭 락사(얼큰한 생선 육수로 맛을 낸 국수), 나시 칸다르(밥에 각종 반찬을 곁들여먹는 인디안 무슬림 요리)등등 생각만 해도 침이 나온다.

이 책을 읽고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아직 가보지 않은 곳도 많고, 마셔보지 못한 술도, 맛보지 못한 음식도 많으니까. orientshine@naver.com

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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