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매 맞는 아이
/임석준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원장
16∼17세기 절대왕정 시대 영국의 왕실에는 왕자를 대신해 '매 맞는 아이(whipping boy)'가 있었다. '매 맞는 아이'는 젊은 왕자에게 배정된 어린아이인데, 왕자가 버릇없는 짓을 하거나 학업을 게을리하면 그를 대신해 벌을 받았다. '매 맞는 아이'는 평민 출신이 아니라 아주 높은 귀족 출신의 자녀 중에서 선발했고, 그는 왕자와 젖먹이 시절부터 함께 자라면서 끈끈한 유대를 형성했다. 영국에서 '매 맞는 아이'를 둔 이유는 첫째, 왕의 자리는 신으로부터 받았다는 왕권신수설의 영향으로 왕자를 벌줄 수 없었기 때문이며, 둘째, 왕자에게 친구가 나를 대신해 매 맞고 있다는 죄책감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왕자를 바른길로 인도한다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은 독일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제1차 세계대전의 평화협정인 베르사유 조약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 국민 전체를 벌주는 가혹한 조약이었다. 조약은 독일제국과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식민지와 특허권을 모두 빼앗았고, 전쟁 기간 입은 모든 피해에 대한 엄청난 배상금을 독일 국민들에게 지불하게 만들었다. 또한 독일 국민 전체를 전쟁의 모든 원인에 대한 책임자로 몰았기 때문에 훗날 히틀러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증오를 키웠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은 어떻게 하면 잔혹한 나치와 독일 국민을 분리해 취급할 것인가를 고심했다.
일본이 독일처럼 과거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는
승전국이 일본판 '매 맞는 아이'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행 가르치고 비판하지 못하는
일본인에게도 불행한 일
전승국은 독일 국민과 나치 수뇌부를 분리해 벌을 주는 '매 맞는 아이' 전략을 선택했다. 즉, 히틀러와 그의 수뇌부를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악당으로 만들어 독일 국민을 대신해 '매 맞는 아이'로 만들었다. 나치라는 '매 맞는 아이' 덕분에 전후 독일 국민들은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이나 강제수용소의 가스실에 대해 자유롭게 학습할 수 있었고, 후대의 독일 정치인들은 상처를 입은 민족과 국가에 대해 진정한 사죄를 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히틀러와 나치의 잔혹성을 세상에 알리는 영화와 다큐멘터리는 무수히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나치를 독일 국민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버릇은 사라졌다. 독일의 곳곳에는 나치의 만행을 알리는 기념관이 있고, 수도 베를린에는 홀로코스트를 추모하는 유대인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에는 군부의 참혹상을 인정하는 국립 박물관이나 기념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는 일본이 독일처럼 어두운 과거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 이유는 승전국이 일본판 '매 맞는 아이'를 만들지 못해서일 것이라 생각한다.
1946년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동아시아의 전쟁 범죄인을 심판하기 위해 극동국제군사재판이 도쿄에서 열렸다. 하지만 당시 일본 왕이자 최대 책임자였던 히로히토와 주요 일본 왕족들은 처벌을 면했다. 또한 난징 대학살의 지휘관, 생체 실험 부대인 731부대의 책임자와 그 관계자들 역시 기소되지 않았다. 그 결과 도쿄 재판에 의해 A급 전범으로 분류되어 처형된 사람은 28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사실은 독일의 전쟁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의 결과와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히틀러가 독일의 '매 맞는 아이'가 되어 아이러니하게 그의 범죄를 독일 국민들로부터 씻어 주었다면, 우리는 일본의 '매 맞는 아이'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히틀러, 힘러, 괴링, 괴벨스 등의 이름은 아직도 전 세계가 알고 있지만, 전쟁을 총지휘한 히로히토 국왕과 도조 히데키 수상, 난징 대학살의 지휘관이었던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731부대의 책임자 이시이 시로의 이름은 소수의 역사학자들만이 알고 있다.
일본에 '매 맞는 아이'가 없다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매 맞는 아이가 있었다면 일본 국민도 독일 국민처럼 '그들'의 만행을 가르치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매 맞는 아이'가 없는 일본의 입장에서 전쟁의 만행은 곧 국민 전체의 만행이 되며 사과는 곧 일본 국민 전체가 사과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은 양국의 이익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양국은 공통된 이익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민주주의, 시장경제, 아시아적 가치 등 많은 공통된 가치를 공유한다. 또한 과거와는 다르게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과 문화를 높게 칭찬한다. 우리도 일본에 대해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고 일본인들에게 더 관대하게 다가갈 수 있다. 1일 한국에서 무려 3년 반 만에 한·일·중 정상회의가 열렸다. 세 정상은 "한국, 일본, 중국이 문화적 공통점과 협력의 역사를 바탕으로 앞으로 3국간 협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자"고 했다. 이번 기회에 한·중·일 국민 모두가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일본판 '매 맞는 아이'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