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으로만 떠돌던 '감정 비리'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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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의 한 모텔 신축 공사를 둘러싸고 건축주와 건축업자 간에 공사대금을 둘러싼 소송이 벌어졌다. 법원은 공사대금을 정확히 측정하라며 전문 감정인 A(54) 씨를 촉탁했다.

돈 받고 엉터리 감정
부산지검, 건축사 구속 기소
무자격자에 맡겨 결과 법원 제출
안전진단업체 대표도 구속

그런데 A 씨는 건축주와 건축업자에게 접근했다. A 씨가 유리한 감정을 내세워 돈을 요구하자 건축업자는 1천80만 원을, 건축주는 850만 원을 건넸다. A 씨는 공사대금을 20억 2천여만 원으로 산정, 법원에 평가서를 냈다. 하지만 누구에게 더 유리한지는 A 씨밖에 모를 일이었다.
재판 결과까지 좌우하는 민사재판의 '감정(鑑定)'이 엉터리로 이뤄져 온 사실이 검찰 수사로 처음 드러났다.

부산지검 특수부 수사과(이동은 수사과장)는 돈을 받고 민사소송 감정을 엉터리로 한 혐의(배임수재) 등으로 건축사이자 법원 감정인 A 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5일 밝혔다.

검찰은 또 법원에서 촉탁받은 감정인 대신 자격 없는 사람에게 감정을 하게 하고 그 감정 결과를 법원에 제출한 혐의(허위감정, 사문서위조) 등으로 안전진단업체 대표 B(56) 씨를 구속 기소하는 한편, 비리에 연루된 기술사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또 하도급을 받아 허위 감정을 한 업체 직원 등 3명도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엉터리 감정은 부산고법 산하 3개 법원에서 벌어졌고, 검찰 수사로 범행이 밝혀질 때까지 허위 감정으로 재판이 진행되기도 했다

B 씨는 A 씨와 다른 직원 등 2명이 법원에서 감정을 촉탁받자 실제 감정은 다른 직원들에게 시킨 뒤 법원에는 두 사람 명의로 감정서를 낸 혐의다. 또 감정인이던 직원이 퇴사했는데도 다른 기술사에게 부탁해 감정서를 작성하는 수법으로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기술사 자격증으로 감정인에 선정된 C(46) 씨는 감정 일을 맡게 되자 다른 업체에 감정을 맡겨 그 결과를 법원에 낸 혐의로 이번에 불구속 기소됐다.

건축이나 의료 등 전문 분야 소송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감정 비리가 수사로 밝혀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건으로 법원 감정인 관리에 손질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정인 선서 없이 감정을 하는 '감정촉탁' 제도의 경우, 허위 감정을 하더라도 감정인을 처벌할 수 없다. 이번에도 검찰은 13건의 허위 감정을 수사했으나 법정 선서 없이 감정촉탁을 한 3건은 처벌을 못 했다는 설명이다.

부산지검 차맹기 2차장검사는 "민사소송에서 감정이 소송 승패나 그 가액에 중요한 증거로 이용되면서 감정 비리 문제가 암암리에 지적돼 왔다. 감정 비리는 민사소송 제도의 기본적 공신력과 직별되는 문제이니 만큼 향후 유사 범죄가 적발될 경우 엄단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감정(鑑定)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법관의 판단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특정 사안에 대해 구체적 사실 판단을 하고 법원에 보고하는 일종의 증거 조사다. 건설이나 의료 등의 분야에서는 '감정 재판'이라고 할 정도로 전문인의 감정이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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