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줘도 못 받나"…한심한 부산시 문화재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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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시 지정 문화재에서 해제된 고려오층석탑. 전문가들은 부산지역에 남아 있는 석탑 중 가장 가치가 높은 문화재로 평가해 왔다. 동래구 제공

소유주가 기증 의사를 밝힌 문화재가 부산시의 소극적인 대처로 타 지역으로 반출돼, 최근 시 지정 문화재에서 해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소유주의 문화재 반출로 지정이 해제된 건 이번이 처음으로, 부산시가 기증 가능한 문화재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시 문화재 13호 고려오층석탑
소유주, 시에 기증 의사 밝혀

시 "이전 비용 마련 어렵다" 입장
타 지역 옮겨 문화재 지정 해제


20일 부산시와 동래구에 따르면 동래구 온천동 한 개인주택 정원에 있던 고려오층석탑(시 유형문화재 제13호)이 7월 1일자로 문화재에서 해제됐다. 석탑 소유주가 주택을 팔고 경기도로 이사를 가면서 석탑까지 함께 옮겨가 버린 것이다.

앞서 시는 소유주가 해당 문화재를 반출했다고 통보해 와 시 지정 문화재에서 해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취재진 확인 결과 당초 석탑 소유주는 시에 기증을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8월께 해당 주택을 매입한 부동산개발업체 관계자는 "문화재가 있으면 개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석탑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진행했다"며 "소유주가 시에 기증 의사를 타진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예산(이전 비용)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이사를 하면서 함께 옮겨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소유주는 6월께 특수장비를 동원해 경기도 여주시의 개인 농장으로 해당 석탑을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시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시 문화재 중 지정이 해제된 사례는 모두 21건(유형문화재 8건, 무형문화재 1건, 기념물 11건, 문화재자료 1건)으로, 이 중 문화재 소유주가 타 시·도로 이사를 하면서 해제된 사례는 고려오층석탑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화재나 개발로 사라지거나, 보물 등 국가 지정 문화재로 승격되면서 해제된 경우다.

부산시 관계자는 "타 시·도에서는 소유주 전출로 지방문화재에서 해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석탑을 기증 받더라도 고증을 거쳐 전문업체에 의뢰해 옮기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곧바로 예산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며 고 말했다.

학계는 타 지역에 비해 고려 시대 유물이 흔치 않은 부산에서 해당 석탑의 가치가 특히 높다고 평가해 왔다.

1972년 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오층석탑은 중구 대청동의 한 일본인 별장에 있던 것을 1950년대 온천동의 개인주택으로 옮겨 온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 높이는 4.2m에 이르며,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이중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갖춘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을 보여 준다.

부산지역의 한 문화재 전문가는 "고려오층석탑은 크기와 당당함, 짜임새 등으로 볼 때 부산지역 최고 수준의 석탑이었다"며 "의지만 있다면 이전 비용 정도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텐데 시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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