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의 현장 '동래역' '개발 민원'에 결국 헐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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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진지 80여년만에 헐리게 될 운명에 놓인 부산 동래구 낙민동 동래기차역사(驛舍). 한 시민이 역사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겨 있다. 김병집 기자 bjk@

근대 문물 유입의 관문이자 일제 수탈의 상징적 공간인 동해남부선 '동래역'이 도로 개설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15일 부산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 영남본부에 따르면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에 따라 동래구 낙민동 동래역사가 내년 연말께 철거될 예정이다. 철도시설공단 측은 역사를 철거한 뒤 철도 교량 하부를 통과하는 연결 도로를 개설해 동래역사 남·북 지역을 잇는다는 계획이다.

학도병 차출·물자 이동 통로 역
80년 역사 부산 대표 근대건축
동해남부선 복선화사업 따라
내년 역 허물고 도로 개설 계획
市 고도심 활성화도 무산 위기

철도시설공단 영남본부 관계자는 "동래역을 보존해달라는 주민 요청이 있어 8월께 역사를 우회해 도로를 내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났다"며 "도로를 빨리 개설해달라는 민원도 많아 기존 계획대로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동해남부선이 부설되면서 1933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동래역은 부산에 남은 대표적 근대건축물이다. 1934년 8월 15일 신축한 뒤 수차례 증개축을 했지만 벽돌·나무 구조와 박공지붕 등의 보존 상태가 양호해 등록문화재 지정이 추진돼왔다. 2013년에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철도기념물로 지정하고, 보존 방침을 대대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현재 부산에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 중 철도관련 업무시설은 부산진·동래·기장·좌천·송정·사상역 등 6곳이 전부다.

향토사학자들은 동래역사가 근대건축물을 넘어 우리나라 근대화와 일제강점기 아픔의 상징물로서 보존 가치가 높다고 평가한다.

학도병과 위안부로 끌려간 이들의 생이별 장소였고,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전쟁 물자로 쓰기 위해 동래시장 놋그릇과 학교 종까지 수탈해 동래역을 통해 실어나르기도 했다.

한국기독교선교박물관 안대영 관장은 "동래역을 통해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와 서구 문물을 전파하는 등 근대화 관문 역할을 했고, 1950년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 역이다"고 설명했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은 "근대건축물의 가치를 현재의 잣대로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한 번 소멸되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우선 보존을 하는 게 원칙이다"고 강조했다.

앞서 부산시는 동래역을 중심으로 고도심 활성화 사업을 준비해왔지만, 역사가 헐릴 경우 사업 자체가 무산될 상황에 놓였다.

부산시 관계자는 "동래역사를 거점시설로 아카이브 박물관과 광장 조성 등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철거 소식이 들려 당황스럽다"며 "역사 보존을 위해 국토부와 철도시설공단 측에 사업계획 변경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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