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 이 노래 이 명반] 15. 허스키 보이스 장필순 1집과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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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수 고정 관념 깬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대모

'노래 잘하는 가수'라는 명칭이 합당한 뮤지션 장필순. 페이퍼레코드 제공

'가요'라는 이름과 '가수'라는 명칭은 '노래'라는 기능적 측면만 강조되어 있으며 노래를 하는 당사자에만 철저히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외국 대중음악계에 비해 연주와 편곡, 프로듀싱 등의 역할이나 비중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거나 묻혔던 우리 대중음악계의 인식이나 관행 아닌 관행은 항상 '노래'그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지게 만들었던 것이리라 생각된다.

서울예전 서클 '햇빛촌'으로 음악 시작
'굿모닝 대통령' OST 계기로 1집 탄생
'어느새' 대표곡으로 기억될 만큼 히트
2집 절반 노랫말 쓰고 혼자서 동분서주

폭발적인 절창 스타일의 가창력과 3단 고음 구사력은 지니지 못했거나, 사용하지 않더라도 음악계 종사자 및 음악평론가, 그리고 많은 대중음악 애호가들은 단순히 여성 가수로만 표현될 때라도 '장필순'이라는 이름을 두고는 분명코 "노래 잘 하는 가수"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그 사실에 수긍한다는 것이다.

■ '햇빛촌', '소리두울' 그리고 '오·장·박'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언더그라운드 계열 가수들의 대모, 큰언니'라는 표현으로 불릴 만한 합당한 이름은 아마도 장필순일 것이다. 서울예전 재학 시절인 1982년에 대학연합창작음악서클이었던 '햇빛촌' 활동으로 음악을 시작했던 장필순은 후에는 '소리두울'이라는 그럴싸한 팀 이름도 붙여졌지만, 서울예전 같은 과 동기였던 김선희와는 '햇빛촌' 이전부터 함께 노래하곤 했다.

두 사람은 대학 2학년 때 교내 가요제에 출전하여 대상을 탔으며, 그러다 '햇빛촌'을 알게 된다. 처음엔 듀오 이름도 없이 단순하게 김선희와 장필순,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신촌 중심으로 대학가 카페 등에서 노래를 하는 '소리두울'의 활동은 1988년까지 이어졌고, 앨범 한장도 녹음했지만 김선희가 유학을 가게 되면서 자연스레 해체된다. '소리두울'의 활동 기간 중 참여한 옴니버스 앨범들인 '캠퍼스의 소리', '햇빛촌', '우리노래 전시회 2'에서는 장필순 초기의 포크적이며 다소 예쁜 스타일의 음악들을 접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음악을 그만둘 줄 알았다고 회고하는 장필순은, 학교를 다니면서 낭만적인 여가활동 정도로 여겼지 프로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계속 인연이 닿고 소문이 퍼지면서 본격적인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 장필순은 따로또같이, 들국화, 조동진, 해바라기 등 선배들의 무대에 게스트 혹은 코러스 세션으로 초대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오석준, 박정운과는 이상은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굿모닝 대통령' OST 참여가 초석이 되어 솔로 1집이 나온 이후인 1990년에 잘 알려진 '오·장·박'이 탄생한다. 

장필순 1집 앨범(왼쪽)과 2집 앨범 표지.
■ 매력적인 음색의 초기 앨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중반까지 우리 대중음악계를 빛낸 주요한 걸작 앨범들에는 코러스 세션 크레디트에서 장필순이란 이름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상당히 큰 편으로, 장필순은 믿음직하고 선호되는 전문적인 코러스 세션 가수이기도 했다. 게다가 한때는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동갑내기 실력파 우순실 등과 함께 CM송 가수로도 활약했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살짝 안개가 덮힌 듯한 신비한 음색의 소유자', '커피빛 보이스의 여가수' 등의 표현이 따라다녔고, 과하지 않게 허스키하면서도 여운이 오래 남는 특유의 음색과 창법은 도회적인 색채를 지닌 세련됨과 자주 비견되기도 했다.

김현철이 프로듀싱한 장필순의 솔로 데뷔 앨범인 1집은 1989년에 9곡의 노래를 담아 출반됐다.

김현철, 손진태, 오석준의 곡들이 고루 수록된 1집은 조동익, 송홍섭, 김희현, 배수연, 그리고 함춘호, 손진태, 김현철, 최태완, 황수권 등 최고 기량의 세션맨들이 참여했다. 코러스에는 장필순 본인을 비롯해 윤영로, 손진태, 박학기, 김현철이 참가한 알찬 데뷔 앨범이었다.

이 솔로 데뷔 시절부터 포크의 영역을 뛰어넘어 보사노바와 유로 팝 스타일, 그리고 퓨전 재즈의 색채가 앨범 전체에 흐르고 있던 음악들을 자유자재로 소화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곡 소화력과 탁월한 표현력은 빛을 발한다. 
장필순 캐리커쳐.
■ 여성가수 고정 관념 깨고 영역 확장

세련된 연주를 바탕으로 보사노바 리듬이 상쾌한 '어느새'가 대중적인 히트와 함께,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장필순을 상징하는 대표곡들 중 하나로 기억될 만큼 이 노래의 반응이나 영향력은 컸다. 여성 가수라면 고음역의 예쁜 목소리여야 한다는 이전까지의 일반적인 생각을 깨며 오래 남는 매력적인 목소리와 최상급의 연주력이 빚어낸 음악들은 우리 대중음악의 수준이나 영역을 또 한 단계 확장했다.

'잊지 말기로 해'에서는 코러스 정도만이 아니라 아예 듀엣으로 나선 김현철 특유의 창법과 장필순의 그것과 잘 어우러진 낭만적이고 사랑스런 곡이기도 하다. 이 데뷔 앨범으로 인해 팬들과 음악관계자들은 신인 여가수 장필순에 주목했고 아울러 '노래 잘 하는 가수'라는 표현을 붙이게 된다.

'오·장·박' 트리오의 정규 앨범발매 후인 1991년에 상당히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커버 사진으로 장식된 장필순의 솔로 2집이 공개된다. 수록된 9곡 중 손진태의 곡이 가장 많았고, 그 외에도 조규찬, 장기호, 하광훈, 한경훈, 유영석이 곡을 주어서 전체적으로 통일감 없이 많이 흔들렸던 앨범이었다고 장필순 본인도 자평하고 있다. 절반 이상의 곡은 직접 장필순이 노랫말을 썼다.

세션진들도 1집에 비해서는 더욱 다양하고 많이 참가했다. 앨범 중 방송을 통해서는 '여행'이 알려졌지만, 상큼한 레게 리듬이 과하지 않게 접목된 '외로운 사랑'도 초기 장필순의 대표곡으로는 손색이 없는 트랙일 것이다. 장기호의 '그리움에 지친 마음'과 한경훈의 '꿈' 같은 곡도 2집에서는 대표적 곡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영석 자신의 곡 '내사랑인걸'에서 노래까지 나눠 부르며 입을 맞춰주고 있으며, 대중적인 감각의 곡으로도 손색이 없는 스타일이다.

이후 솔로 3집부터 장필순은 자신의 색과 음악적인 면을 강조하며 보다 뮤지션적이며 아티스트적인 입장으로 현재까지의 싱어송라이터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최성철 · 페이퍼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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