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에덴공원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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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이 끝없이 이어졌고, 낙동강의 낙조는 장관이었다. 겨울 철새떼의 군무는 장엄했다. 사시사철 손을 맞잡은 연인들이 갈대밭 사이 미로 같은 오솔길을 거닐며 데이트를 했고, 을숙도를 오가는 나룻배는 정취를 더했다. 애인이 없으면 또 어떠랴. 젊은이들은 끼리끼리 갈대로 지붕을 엮은 토속주점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초가집, 하늘목장, 나그네, 나루터, 대학촌, 강나루, 너와 나…. 토속주점들은 경쟁하듯 스피커를 울리며 음악을 쏟아냈다. 젊음과 낭만, 사랑이 어우러졌던 7080 부산 청년문화의 1번지, 에덴공원!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 자리한 에덴공원은 본디 이기대 몰운대 등과 함께 부산 팔선대(八仙臺)에 속한 강선대(降仙臺)가 있던 나지막한 산이었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전국을 두루 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동쪽 맞은편 산을 보니 마치 학이 날아오르는 듯하여 승학산(乘鶴山)이라 했고, 그 산에서 신선이 학을 타고 이곳으로 내려오는 형상이라 하여 강선대라 불렀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해안포대가 있었던 강선대 일대를 1953년 부산의 독실한 기독교 교인인 백준호 장로가 사들여 공원 조성에 나섰다. 백 장로는 1956년 구약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을 기려 '에덴원'으로 이름 지었고, 그 뒤 버스 정류장 명칭으로 쓰이던 '에덴공원'이 공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에덴공원이 부산을 넘어 전국적 명소로 이름을 떨치게 된 건 백 장로의 두 아들 공이 크다. 형 광덕은 클래식 전문 카페 '강변'을, 동생 성수는 팝송 전문 카페 '강촌'을 열었고, 이후 문화예술인들과 청춘남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낙동강 하굿둑이 들어서고, 하단동 일대에 택지가 조성되면서 에덴공원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 무성하던 갈대숲과 토속주점들이 사라지고, 아파트와 주택이 속속 들어섰다. '강변'은 1986년 강선대 꼭대기로 밀려나 야외음악당 '솔바람'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인근 주민의 체육공원 정도로 쇠락하던 에덴공원의 부활을 위해 부산시가 나섰다. 시는 그제 '에덴유원지 관광자원화 사업' 설계 용역 업체 공모를 했다. 시는 주막거리를 재현하고, '강변' '강촌' 등의 의미를 새겨 음악이 있는 공원으로 에덴공원을 되살릴 방침이라고 한다. 음악성과 역사성을 잘 살려 에덴공원이 다시금 전국적 명소로 부활하길 기대한다. 장지태 수석논설위원 jj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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