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지 말라" 한마디에 해고되는 노인일자리사업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해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 택배 업무를 보는 어르신들의 모습. 부산일보DB

최 모(78·여) 씨는 '노인사회활동(노인일자리) 지원사업'의 참여자로 선정돼 1년 계약으로 올해 3월부터 부산 연제구 부산시노인종합복지관 주간보호센터에서 요양보호사 보조업무를 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에 즐거웠다.

연제구 70대 요양보호사 보조
갑자기 해고 통보 받아
전국형 노인일자리사업
법적 보호장치 없어 고용 불안정


하지만 지난달 13일 복지관으로부터 갑작스레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최 씨는 "젊은 사람들에 비해 업무가 미숙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 동안 성실하게 일했다"며 "복지관이 특별한 이유없이 복지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것은 노인 복지 뿐아니라 고용 안정에도 위배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복지관 측은 "최 씨가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업무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아 노인일자리사업 참여 해지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어르신들에게 사회 참여의 기회를 주고, 소득을 지원하는 '전국형 노인일자리사업'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이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공공 분야의 노인일자리사업은 크게 '전국형'과 '지역형'으로 나뉜다. 전국형은 최 씨처럼 취약 노인의 요양을 보조하거나 독거노인의 말벗이 되어주는 일이다. 지역형에 참여한 노인은 초등학교 급식 도우미나 CCTV 상시 관제 요원 등으로 활동한다.

정부가 지역형만 어르신의 근로 계약과 해고 등을 근로기준법에 따르도록 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전국형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해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다.

노인일자리사업의 근로계약서 격인 '참여조건 합의서'를 보면, 지역형의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령을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6개월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는 30일 전에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보하도록 돼 있는 등 근로자 해고 요건이 까다롭다.

하지만 전국형의 경우에는 참여자 계약 해지와 관련, '참여자가 불성실하게 활동할 때에는 협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협약을 해지할 때에는 7일 전에 통보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사전 통보 시일은 일주일에 불과하고, 해지 사유로 제시한 '불성실'은 사업 주체가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 참여 어르신들은 언제든지 부당 해지로 내몰릴 수 있는 셈이다.

부산고용노동청 관계자는 "아무리 적은 시간 동안 일을 하더라도 근로의 형태를 띠고 있으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며 "미리 고지된 7일도 아닌, 하루 전에 통보한 것은 잘못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전국형 노인일자리사업은 근로와 직업의 개념이 약하며, 여가 선용과 소득 지원을 위한 활동과 복지의 개념이 강해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 적용 등 참여자 보호가 미비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내년에 사업을 개편하면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이대성·이혜미 기자 nmak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