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원전항 갈치 배낚시] 새벽녘에야 터진 손맛 '9회말 2아웃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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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내내 불황이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굵은 갈치가 폭발적으로 물어주었다. 동틀 무렵 4지급이 훌쩍 넘는 큰 갈치를 잡은 낚시인이 피로도 잊은 듯 활짝 웃었다.

추석 때 고향에 갔더니 아버지가 매형 칭찬을 입이 마르게 하셨다. "니네 매형이 낚시를 가서 갈치를 잡아왔던데 아주 싱싱해서 구이나 찌개 맛이 기가 막히더라"는 얘기였다. 명색이 낚시 취재를 하면서 한 번도 먹을 만한 물고기를 드리지 못한 것이 매형과 큰 차이였다. 매형이 낚시를 다녀온 곳이 마산 근처 어디라고 했다. 마침 창원시 마산합포구 원전항 손진성(010-4224-3419) 선장의 진영호에서 세 손가락급 갈치 조황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효도까진 아니지만 명예회복이라도 할 요량으로 취재를 갔다.

가을이 짙어지면서
3~4지급 입질 잦아

씨알 굵어 바닥층 공략
루어보다 생미끼 좋아

수심 다르게 채비 배치
유영층서 유혹 조과 '굿'

■루어 채비 대박 노려

한여름 밤 진해 선상 갈치 낚시를 갔을 때는 루어가 대세였다. 풀치급 갈치의 활성도는 매우 좋았다. 집어등을 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갈치들이 춤을 추듯 미끼를 탐닉하였다. 야금야금 갉아먹는 생미끼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루어에 조황이 훨씬 뛰어났다.

2지급 갈치가 가을이 짙어지면서 3지급으로 바뀌고, 더러 4지급 큰 갈치도 입질이 잦다고 했다. 마릿수를 노려볼 욕심에 형광 루어를 잔뜩 챙겨 창원 마산합포구 원전항으로 갔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매일 출조를 하는 진영호였다. 구산면 보해낚시(055-222-5251)에 들러 이준일 사장에게 조황을 물어보는데 손님 대부분이 꽁치 미끼를 챙기는 것이다. 루어 낚시 조황이 훨씬 좋은데 왜 굳이 생미끼를 챙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원전항에서 배를 타고 실제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t급 진영호의 승선 낚시인 대부분이 생미끼 채비를 해 온 것이다. 오직 루어낚시를 하고자 마음먹은 사람은 보해낚시 이 사장과 기자 두 사람뿐이었다.

루어 채비라고 해서 갈치를 낚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패턴이 다른 낚시를 하므로 옆 사람과 보조를 맞추기가 힘든 것이었다. 생미끼는 조류에 따라 최대 2대 정도의 낚싯대를 드리우지만, 루어는 던지고 감는 행위를 반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일정 정도의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생미끼 채비를 했기에 좁은 공간에서 루어로 낚시를 하기가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문제는 또 있었다. 갈치 씨알이 굵어지면서 집어등을 보고 피어오르기보다는 민감하게 바닥층에서 입질하기에 루어로 공략하는 것이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활성도가 떨어져 자정까지 선상 전체에서 고작 10마리 안팎의 조과만 나왔다.

집어등을 환하게 켠 채 갈치 낚시에 열중하고 있다.
■갈치 요리 풀 세트

드문드문 갈치가 올라왔다. 씨알 좋은 갈치가 나오기로 소문이 자자한 거제 칠천도 인근 수야방도 양식장 근처에 갔지만, 입질이 신통찮았다. 1시간쯤 하다가 내만으로 옮겼지만 그곳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나오는 갈치였지만 씨알은 3~4지급으로 굵었다. 오후 7시부터 시작한 갈치 낚시가 자정이 다 되도록 뚜렷한 조과를 보이지 못했다.

스무 명에 가까운 낚시인들이 더러 지쳐 선실에 들어가기도 하고, 낚싯대를 접고 쉬는 사람도 다수였다.

유독 청주에서 온 부부 낚시인은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초여름부터 이곳에 서너 번 출조했다고 했다. 풀치가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갈치 낚시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김정식·이순희 부부는 모두 4대의 낚싯대를 펴고 오직 갈치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멀리 청주에서 부인과 함께 온 김정식 씨도 새벽녘에서야 마릿수 손맛을 봤다.
"얼마 전에 왔을 때도 갈치를 많이 잡았네요. 오늘은 친구들과 같이 왔죠." 김 씨 부부는 싱싱한 생갈치잡이에 재미를 붙여 벌써 몇 번째 출조를 한 경우였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도 시련이 왔으니 그날이 오늘이었다.

"참 안 되네요. 이런 날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면 비가 억수같이 온 어제도 입질이 좋았다고 했는데 아마 비가 온 후 염분 농도가 달라져 갈치가 입을 닫아버렸는지 몰랐다.

다들 망연자실 자리만 지키고 앉았다. 자정 즈음에 손 선장이 각자의 쿨러를 열어 그나마 잡은 갈치 몇 마리씩을 가져갔다. 밤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빈 쿨러라 멋쩍었다. 몇 사람들이 낚싯대를 접은 사이에 공간이 생겨 루어를 몇 번 던진 끝에 갈치 한마리를 걸어냈다. 급하게 주방으로 뛰어갔더니 손 선장이 이미 요리를 마쳤다며 괜찮다고 했다. 어쨌든 루어에도 갈치는 물어주었다.

허술한 조과와 달리 밤참은 화려했다. 갈치 무침회, 갈치 썬 회, 갈치 튀김까지 풀 세트였다. 손맛은 제대로 못 봤지만 입맛은 제대로였다.
밤참으로 나온 갈치회. 신선도가 좋아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9회말 2아웃 기사회생

손 선장은 더러 굵은 갈치가 올라올 때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실시간 조황을 올리는 것이다. 나중에 '손선장'이란 검색어로 찾아보니 다양한 낚시 장면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 실감이 났다.

전체적으로 조과가 안 좋은 상황에서도 꼭 포인트마다 갈치를 낚아 올리는 이가 있었다. "마누라가 보면 큰일 난다"라며 사진 촬영을 거부한 낚시인은 무려 3대의 낚싯대를 펴고 곧잘 씨알 굵은 갈치를 잡아냈다. 요령을 물으니, 각각의 낚싯대는 수심을 달리해서 갈치 유영층을 찾아내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차이였다. 예를 들어 15m 수심이라면 12m, 10m, 8m로 채비를 배치해 낚는 것이었다.
새벽 잠깐 동안 낚은 갈치 조과. 가을이 깊을수록 씨알이 굵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낚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유독 이 '은둔 조사'의 쿨러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곡차곡 갈치가 쌓였다.

보해낚시 이 사장도 결국 생미끼 채비로 바꿨다. 대세를 따르니 간간이 갈치가 올라왔다. 하지만 전체 조황이 좋지 않았다. 배불리 먹은 야참에다가 입질이 없어 낚시엔 흥미를 잃어버렸다. 선실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주위가 어수선해서 눈을 뜨니 이미 날이 밝았다. 새벽 3시엔 철수를 한다고 들었는데 5시가 넘었는데 아직 바다 위였다.
 
"잘 물고 있습니다. 9회말 2아웃 역전 상황이네요." 손 선장이 만면 미소를 머금고 부스스 잠이 깬 기자에게 상황을 알려주었다.
보해낚시 이준일 대표도 내내 고전하다가 씨알 좋은 갈치 한 마리를 낚았다.
분명 2시간 전만 하더라도 채 2마리도 잡지 못했던 청주 부부 팀의 쿨러는 어느새 50마리 가까운 갈치가 그득했다. 노심초사하던 선장도, 낚시 손님도 모두 희색이 만연했다. 느지막하게 활성도가 살아나니 선장은 철수 시간을 연장해서 모두 손맛을 보게 했다. 타이밍을 놓친 기자는 입맛만 다셨다. 낚시도, 야구도, 무딘 인생처럼 9회 말에 볕이 드는 모양이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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