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한국은 '기버'인가 '테이커'인가
/임석준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어떤 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기, 능력, 기회의 세 가지 요소가 작동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하고(동기), 재능이 있으며(능력), 어느 정도 운이 따른다면(기회) 이것은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성공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를 지배해 온 성공의 방정식은 '남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빼앗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하고 독한 놈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애덤 그랜트는 협업이 중요한 현대의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바쁜 와중에도 누군가를 돕고, 지식과 정보를 기꺼이 공유하며,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새로운 명제를 내세운다.
"협업 중요한 현대 네트워크 사회
양보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자신의 이익 앞세우는 '테이커'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기버'
아직은 '테이커'에 가까운 한국
'기버'로 외교 방향 전환 필요"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테이커·taker), 받는 만큼 주는 사람(매처·matcher),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기버·giver).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주는 '매처'인데,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공평성, 평등, 호혜주의가 중요한 가치이다. '테이커'는 자신의 이익을 타인의 필요보다 앞세우는 사람이다. 그들은 아랫사람들에게는 혹독하고 윗사람에게는 아부하는 유형이다. '기버'는 상대방을 만나면 그가 무엇이 필요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인간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기'보다 '챙기기'에 익숙한 '테이커'를 어떻게 구별해 낼 수 있을까. 최근 미국에서는 기업의 홈페이지나 연례보고서에 등장하는 CEO의 사진을 통해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기업의 홈페이지나 연례보고서를 보면 CEO가 소개되는데, 어떤 기업은 CEO의 사진과 프로필을 매우 크게 소개하는 반면, 다른 어떤 기업은 CEO의 사진이 없거나 매우 작게 게재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CEO의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업일수록 단기적 이익에 관심이 있고 사회적 책임에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자기 자신을 회사의 중심에 넣는 CEO일수록 타인보다는 나를 챙기는 '테이커'의 경향이 강해서인 듯하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0차 유엔총회에서 '북한' '통일' '새마을' 세 가지 핵심어를 중심으로 기조연설을 했다. 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평화 통일을 이룬 한반도는 핵무기가 없고 인권이 보장되는 번영된 민주국가가 될 것"이라며 지난 7월 이란 핵협상이 최종 타결되었는데 이제 마지막 남은 비확산 과제인 북한 핵문제 해결에 국제사회의 노력을 당부했다. 통일에 대해 박 대통령은 "한반도 분단 70년의 역사를 끝내는 것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밝히고, 북한 문제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유엔이 힘을 모아 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빈곤 탈출에 성공한 모델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소개했다. 새마을운동은 경쟁과 인센티브를 통해 자신감과 주인의식을 일깨우고 주민의 참여 속에 지역사회의 자립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한국은 UNDP, OECD와 함께 새마을운동 특별행사를 열고 개도국 빈곤 퇴치와 혁신적 지역공동체 건설에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새마을운동이 개도국의 '새로운 농촌 개발 패러다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필자는 박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아직도 대한민국이 빈곤한 나라를 돕고, 정보를 공유하며,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 '기버'라기보다는 국제사회로부터 우리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테이커'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물론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의 경험을 빈곤국과 공유하겠다고 했지만, 그 이면에는 '성공한 우리의 모델을 받아들이라' 혹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우리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겠다'는 '테이커'의 복심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사회는 시리아 난민, IS 테러, 기후변화 등 많은 공동의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우리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이러한 공공의제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 않았다.
현재 한국은 유엔 핵심 기관 중 하나인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의장국 역할을 하고 있다. 의장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빈곤 퇴치와 지속가능 발전 분야에서 위상과 역할이 강화될 것이다. 향후 우리의 외교 방향이 한국의 모델을 국제사회에 수출하는 '테이커'의 입장을 견지하기보다는 한국이 글로벌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먼저 묻는 '기버'의 입장이 되었으면 한다. 영어의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내가 먼저 주어야 남으로부터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