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복원이 동래읍성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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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조방식 무시 멋대로 공사, 높이까지 높여

본격적인 복구 공사에 앞서 붕괴된 인생문 주변 성곽 전체가 허물린 채 천막이 덮여있다.

지난 17일 무너져 내린 동래읍성 인생문 주변 성곽이 읍성과 관련 없는 전통 공법으로 시공된 것으로 드러났다. 인생문처럼 고증 작업 없이 복원된 정체불명의 문화재가 수두룩해 복원 사업 전반에 대해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부산 동래구청에 따르면 구청 측은 10개월 동안 동래읍성 일대 복원 공사를 벌여 2005년 3월 인생문과 문루, 옹성(길이 11m)과 주변 성곽(길이 50m) 등을 복원했다. 당시 차량 통행용인 인생문 북측과 남측 터널은 콘크리트와 철근을 쓰는 현대식 공법으로, 인생문과 나머지 성곽 구간은 전통 공법으로 지었다.

붕괴된 인생문 축조 방식에 
고증과  다르게 '속채움석 쌓기' 
바깥돌-안돌 잘 맞물리지 않아

"도처에 엉터리 복원 문화재  
복원절차 찬찬히 짚어볼 때"

이번에 붕괴된 곳은 전통 공법 구간으로 성벽의 앞뒤를 큰 화강석으로 쌓고 내부를 작은 돌로 채우는 '속채움석 쌓기' 방식을 썼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동래읍성 고유의 축조방식에 어긋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발굴 조사를 통해 밝혀진 1731년(영조 7년) 당시 축성법은 성곽 내부의 바깥 1m를 작은 돌로 쌓고 나머지 안쪽은 흙을 채워 견고하게 다지는 방식이다. 붕괴된 성곽의 구조와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그나마 공사 과정에서 속채움석 쌓기 방식을 제대로 지켰는지도 의문이다.

옛 성곽분야 한 전문가는 "바깥쪽과 안쪽 돌이 잘 맞물려야 하는데 무너진 단면을 보면 성곽 안에 단순히 잡석을 채워넣은 것처럼 보인다"며 "성벽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건 성벽 복원 정비에서 가장 안 좋은 방법을 썼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고 지적했다.

동래구 관계자도 "현대에는 외벽용으로 매끈한 돌을 사용하다 보니 내부의 작은 돌과 맞물리는 정도가 옛날 자연석 때보다 헐거울 수 있다"며 "당시 공법에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 시 문화재위원의 현장자문을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차량 통행용 터널을 위해 성곽 높이를 다른 구간보다 1~2m  높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성곽이 차량 진동에 더 취약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문화재 엉터리 복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앞서 연제구는 2009년 발굴 조사도 없이 배산성지(시 기념물 제4호) 내 우물터를 복원했고, 동구도 2003년 원래 자리가 아닌 자성대(부산진지성) 안에 영가대를 세웠다.

기록에도 없는 진남대(1975년 복원)와 원형을 잃어버린 다대포객사(1970년 복원)도 엉터리 복원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부산지역 한 문화재 전문가는 "1980년대 초까지 전국적으로 치밀한 고증 작업 없이 행정편의주의에 따라 문화재 복원이 진행됐는데, 지금껏 이런 관행이 남아있는 건 분명 문제다"며 "이번 붕괴사고를 계기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문화재 복원 절차 전반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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