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동천(東川)의 꿈, 부산의 꿈
/정달식 라이프팀장

삼포지향(三抱之鄕). 산, 강, 바다를 갖춘 아름다운 고장이란 뜻이다. 흔히 부산을 얘기할 때 자랑삼아 이 말을 쓴다.
부산 동천을 되살리는 길은 감춰진
본모습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되어
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살고 자연
이 산다. 부산이 산다
그렇다. 부산은 바다와 강, 산을 모두 가진 도시다. 특히 도시의 삼면은 바다와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굳이 이런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바다와 강은 부산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그건 우리의 삶이었고, 터전이었고, 생명이었고, 젖줄이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제대로 관리하고 보존하는 데 실패했다. 도시의 크나큰 자산임에도 말이다.
도로나 항만, 공공건물만이 도시의 주요 자산은 아니다. 오래된 뒷골목, 근대건축물, 삶의 흔적이 담겨 있는 것도 소중한 도시 자산이다. 더불어 부산 곳곳에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강이나 하천도.
이런 자산을, 이런 실핏줄을, 우린 잊고 지냈다. 산업화 물결 속에 그 자취를 숨긴 것도 있지만, 애써 지웠는지 모른다. 동천(東川)도 그랬다.
동천은 부산의 중심 시가지를 지나가는 대표적 도심 하천이다. 백양산에서 발원해 성지곡 수원지를 지나 서면, 범일동을 거쳐 북항으로 흘러든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상당 부분이 복개돼 지금은 동천의 본 모습을 찾기 힘들다.
우린 냄새나는 하천을 덮어 안 보이게 가리고 이를 도로 기능으로 활용했다. 초량천이나 보수천과 같은 수많은 도심 속 하천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도시의 실핏줄인 강과 하천은 대부분 하수도로 전락했다. 도심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던 천(川)은 복개 속에 갇혀, 하나둘 그 기능을 상실했다.
그동안 부산의 강과 천을 살리자는 운동이 없었던 게 아니다. 20년 가까운 세월, 그 한가운데 동천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08년부터 수백억 원을 쏟아부은 동천은 오히려 수질이 나빠졌다는 좋지 않은 소식만이 들릴 뿐이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수질을 개선해 보았지만, 이것도 허사였다. 혹자는 EM(유용 미생물군)흙공을 투하해 동천을 정화하자는 얘기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듯싶다.
동천을 되살리는 길은 복개도로 아래 감추어 버린 본모습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복개된 것을 걷어내고 시멘트를 흙으로 바꾸어야 한다. 당연히 오수와 우수도 분리되어야 한다. 오수는 따로 모아 하수처리장으로 보내고, 우수는 배수로에 받아 하천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의 수질개선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하천 유지수도 공급되어야 한다. 그래야 생물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동천이 복원돼 일대가 살아나면 동천을 따라 연결된 부산시민회관, 문현금융단지, 부산시민공원, 송상현광장은 물론 재개발이 진행 중인 북항까지도 재생할 수 있다. 동천을 따라 사람들이 거닐고, 서울 청계천보다 더 훌륭한 수변 보행로가 만들어지는 건 결코 꿈이 아닐 터이다.
첫째가 이처럼 동천을 진정한 실핏줄로 복원하는 것(상책)이라면, 둘째로는 이를 근거로 관광자원화하는 방법(하책)도 있다. 상류는 실개천으로 되살아나고 하류는 배를 띄워 관광자원화하는 것 말이다. 그 옛날 동천에는 현재의 전포동이 하구(河口)가 되어 배가 정박하였다고 한다.
동천 주변엔 수많은 관광자원이 있다. 동천을 따라 좌우로 펼쳐지는 문현금융단지, 부산시민회관, 문현벽화마을, 중앙시장 옥상마을…. 이야기 또한 차고 넘친다. 아시아 최고의 목재회사였던 동명목재, 오늘날 삼성그룹을 있게 한 모기업인 제일제당도 모두 동천가에 있었다.
이를 통해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프랑스 파리의 센 강,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수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것이야말로 도시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길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부산엔 또 한 번 도시하천 복원 바람이 불고 있다. 부산의 천을 살리자는 운동 말이다.
이번만큼은 동천의 꿈이 제대로 펼쳐지길 기대한다. 그래서 잃어버린 부산의 본래 면목을 되찾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했다. 강과 바다, 물의 도시 부산을 이젠 제대로 보여 줄 때가 되었다. 그래야 사람이 살고, 자연이 산다. 그래야 부산이 산다.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