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이규정의 '번개와 천둥'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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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규정 선생이 친필 사인을 한'번개와 천둥'이라는 책을 보내주셨다. 몽골에서 항일운동을 벌인 의사 대암 이태준 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실화소설이다. 분주한 가운데 독서를 미루다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책을 편 어느 날,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단숨에 읽고야 말았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 탓에 뜬눈으로 새벽기도를 드리는 일까지 생겼다. 한 사람의 일생을 몇 시간 만에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감동이지만, 한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활자 속에서 생생하게 마주하며 느껴 오는 감동과 아픔이 나 자신을 향한 반성과 뜨겁게 교차하는 독서였다.

항일투사 이태준 실화소설
이규정 '번개와 천둥'에 감동

몽골의 야생마 타키처럼
순치되지 않는 삶 살아
선비이자 민족의 '대의인'
지금 우리 모습 되돌아보게 해


대암 선생은 1883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에서 출생했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1907년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감화를 받아 신간회와 자매단체인 청년학우회에서도 활동했다. 1912년, 중국 난징 망명을 거쳐, 1914년 선생은 독립군을 양성하자는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몽골로 갔다. 당시 그곳에서 창궐하던 매독으로 고통당하던 민중들의 참상을 보고 헌신적으로 치료활동을 펼쳐 몽골인들에게'신의(神醫)'라고 불렸다. 또한 선생이 세운'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은 임시정부의 운영자금이 조달되는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그 후에도 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던 중 1921년, 그가 38세가 되던 해 일본 장교를 참모로 둔 러시아 백위군 운게른 부대에 피살됐다.

우리 정부는 이태준 선생에게 1980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으며 2000년 7월에는 재몽골한인회와 연세의료원이 주축이 되어'이태준 기념공원'을 몽골 울란바토르 시에 세웠다.

이규정 선생은 2001년 몽골 여행을 갔다가 한국인 안내자의 소개로 이태준 기념공원에 들르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민족의 아픔을 껴안고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태준 선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삶이 가슴을 적셨고,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태준 선생은 유학을 깊게 공부했고 학문으로 익힌 높은 뜻을 온 마음과 뜻과 힘을 합해 실천한 분이다.

공자가 인간을 분류한 종류 중에 향원(鄕原)이라는 것이 있다.'향원'은 내 집에 기침소리를 내며 들어오지 않아도 조금도 유감이 없는 친밀감과 믿음을 주는 사람이며, 자기 주변에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점잖게 지내는 사람을 두고 가리키는 칭호라고 한다. 향원으로 사는 것이 한 사회 일원으로서 더 이상 흠을 잡을 수 없는 세련된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이 향원들이야말로 '덕을 해치는 사람들'이라며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라고 강하게 분노를 했다고 한다. 공자가 향원을 미워한 이유는 겉으로는 신의가 있고 옳은 행동을 하며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결코 성인의 도리를 행할 수 없는 부류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에 태어났으면 세상에 맞게 살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부류라는 것이다.

이태준 선생이야말로 공자가 말하는 '진짜 같은 가짜'인 사이비가 아닌, 배우고 닦은 선비 정신을 진실하게 살아낸 진정한 인격자이자 우리 민족의 대의인(大義人)이다.

이태준 선생은 일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뛰어 넘어섰고, 가족의 안전도 독립운동을 하는 동지들을 지원하는 일보다 우선일 수 없었다. 생전에 이태준 선생이 좋아했다는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몽골의 야생마 타키는 현실에 끝내 순치되지 않는 삶을 살다간 그를 고스란히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황영주

대연동 세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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