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 죽겠는데, 시끄러워 문도 못 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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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10시께 조명등이 꺼지기 직전이지만 농구장 등 운동시설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가득하다. 이대진 기자

주부 A(44) 씨는 요즘 열대야 탓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불면의 주범은 더위가 아니라 '소음'이다.

온천천 낀 부곡·장전동 일대
밤마다 농구·족구 '운동 소음'
인근 주택 주민들 피해 호소
금정구 순찰만으론 역부족


부산대역 인근 온천천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A 씨는 밤마다 농구장과 족구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시달린다. 공 튀기는 소리부터 응원 목소리까지. 지하철이 끊기는 자정 이후 고통은 몇 배로 커진다.

A 씨는 "공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친 게 하루이틀이 아니다"며 "심할 땐 새벽 2시까지 경기를 하는데, 지하철 소음보다 견디기 힘들 정도다"고 말했다.

열대야로 창문을 열어 놓는 날이 많아지면서 창밖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11일 부산 금정구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온천천을 끼고 있는 부곡동과 장전동 일대에서 소음 피해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민원유발자인 '운동 소음'은 10여 년 전 온천천변에 농구·족구·배드민턴장 등 각종 운동시설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특히 여름방학이면 대학생들이 늦은 밤까지 운동을 해, 주민들 시름이 더 깊어진다.

금정구는 올해 들어 오후 10시 이후 조명등을 끄고, 야간 이용을 자제하는 현수막도 부착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순찰반을 꾸려 오후 11시부터 2시간 동안 계도 활동도 벌이고 있지만 '올빼미 운동족'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다.

A 씨는 "주민들이 수차례 항의하자 구청에서 며칠 전부터 뒤늦게 현장 지도를 하고 있는데, 순찰반이 사라지고 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온천천 운동시설 소음 문제는 동래구와 연제구도 마찬가지다.

현재 금정~동래~연제구를 잇는 온천천 14㎞ 구간에 설치된 운동시설은 농구장 8개, 족구장 2개, 배드민턴장 17개 등 30여 개에 이른다. 이 중 금정구 부산대역~장전역 구간을 비롯해 동래구 안락동 배드민턴장과 연제구 온천천관리사무소 일대 농구장 등 주택가와 인접한 곳들이 상습 민원 지역이다.

동래구는 3년 전부터 아예 배드민턴장 조명등을 안 켜고 있고, 연제구는 조명 소등 시간을 자정에서 오후 10시로 앞당기기도 했지만 '야밤의 불청객'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수년간 소음 피해가 계속되다 보니 이웃간 분쟁이 빚어지기도 한다.

부산대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B(45) 씨는 "주변 아파트·빌라 주민들이 늦은 밤에 농구하는 학생들을 야단치다가, 서로 욕설을 하면서 볼썽사나운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금정구 관계자는 "순찰 활동으로는 한계가 있어 야간 시간대 농구 골대에 덮개를 씌우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주민들을 위한 운동시설인 만큼 이웃을 위해 야간 이용을 스스로 자제하는 질서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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