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 이 노래 이 명반] 5. 들국화 1집, 전인권 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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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로 가요 르네상스 연 전인권, '절대 로커'에 오르다

한국 록의 금자탑 전인권. 페이퍼레코드 제공

1985년 발매된 들국화의 1집은 우리 대중음악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린 역사적인 음반이다. 이 한 장의 음반으로 1980년대의 우리는 우리 음악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고, 우리 음악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었다.

1집, 대중음악 수준 몇 단계 상승시켜
두 장의 앨범 내고 멤버들 각자의 길로
솔로 1집, 리메이크 대부분이지만
찬란한 보컬 때문에 새로운 생명력


바야흐로 한국 가요의 진정한 르네상스는 '들국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 당시 모든 대중들은 들국화의 경이로움에 경악했고, 감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들국화는 우리 가요의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온갖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제재로 예술을 억누르던, 암울했던 그 시절, 이런 음악이 이 땅에서 탄생한 것은 기적이었다.

■ 1980년대 코리안 록의 금자탑! 전인권

그런 들국화 음악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전인권이었다. 전인권이 없었다면 들국화의 신화는 있을 수 없었다. 야성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어찌보면 그 자체로 아방가르드한 전인권의 보컬은 들국화를 완전무결하게 해주었다. 

들국화 1집.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1집 이후 들국화는 더 이상 타오르지 않았다. 한반도의 지축을 뒤흔든 1집에 비해 1986년에 나온 2집은 기운이 빠져 있었다. 그들은 불과 1년 만에 빛을 잃었고, 더 이상 우리가 원하는 그런 곡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전인권은 말했다.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고…, 내가 부를 곡이 없었다고….'

결국 들국화는 단 두 장의 음반만을 남긴 채(1986년 스튜디오 라이브 음반까지 포함하면 석 장이다) 해체했고,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것은 전인권의 다음 행보였다.

1987년 전인권은 먼저 팀의 키보디스트였던 허성욱과 함께 '1979-1987 추억 들국화 머리에 꽃을'을 발표했다. 그것은 들국화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었고, 한편 새롭게 도약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들국화의 위대함을 재천명한 불후의 명반

이 음반의 타이틀은 '전인권, 허성욱 추억 들국화'였다. 때문에 두 사람이 주도한 음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전인권에 따르면 이 음반은 철저히 허성욱에게 포인트를 맞춘 음반이었다. 어쩌면 허성욱을 위한 허성욱과 전인권, 그리고, 들국화의 음악이었다고나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이 음반에는 허성욱, 전인권 외에도 기타에 최구희, 베이스에 최성원, 드럼에 주찬권 등 들국화의 멤버들이 모두 참여해 명연을 펼쳐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인권, 허성욱 추억 들국화'.
그래서 혹자는 이 음반을 가리켜 들국화의 마지막 혼을 담은 실질적인 들국화 3집 음반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이 음반의 음악적인 키(key)는 허성욱이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 이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음악을 구체화시키고 실현했던 주인공은 전인권이었다. 그만큼 그는 발군의 보컬 역량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목소리에는 풍부한 음영이 있고, 역동적인 파워가 넘친다.

전인권과 허성욱 아니, 들국화 멤버 모두가 다시금 미래를 향해 도약할 것임을 주창한 음악적 선언문인 '시작곡, 북소리'를 필두로, 우리 가요사에 빛나는 불멸의 명곡 '사랑한 후에'.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알 스튜어트의 'The Palace Of Versailles'를 리메이크한 이 곡은 전인권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전인권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그의 처절하게 포효하는 듯한 가창과 함춘호의 비감 어린 기타 연주와 허성욱의 감성적인 키보드 연주는 지금 들어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당시 들국화 해체 소식에 상실감과 슬픔에 빠졌던 수많은 팬들은 결국 이 곡을 들으면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장진 감독이 "무정부주의자가 이상한 판타지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의 이데아를 노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노래"라고 칭송한 전인권, 허성욱 공동 작사, 작곡, 편곡의 '머리에 꽃을'은 한국판 플라워 무브먼트이자 음악적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그린 곡이다. 한편, 함춘호의 기타가 다시 한번 위용을 과시하는 '이유', 앨범을 통틀어 가장 아기자기하고 재기발랄한 '여자'도 인상적인 곡. 음반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오랫동안 구전가요로 알려져 온 '사노라면'이다. 이 노래는 운동권을 중심으로 전파되기 시작해 대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지던 노래였으나, 전인권이 부르고부터는 한국인의 애창곡이 되었고, 우리 모두의 희망가가 되었다.

■ 또 한 장의 명반 '전인권 1집'

1988년 한반도가 온통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있던 그해 5월 발매된 이 음반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그의 솔로 3집 음반이다. '추억 들국화, 머리에 꽃을' 이후 본격적인 솔로 가수로 나서면서 발표한 이 음반은 전인권이 여전히 1980년대 한국 록의 절대강자임을 만천하에 알린 명반이다.

전작 '추억 들국화, 머리에 꽃을'에서 보여주었던 작, 편곡 능력이 한층 심화되었으며, 내지르듯 포효하면서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불가사의한 가창력도 여전하다. 또한, 키보드에 김효국, 베이스에 오승은, 드럼에 박기형으로 구성된 자신의 백밴드 파랑새의 연주도 무결점 사운드를 뽑아내고 있으며, 최구희, 허성욱 등 들국화 멤버들의 어시스트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낳고 있다.

수록된 10곡 중 거의 절반이 리메이크인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풍부한 들을거리를 제공한다. 이는 이전에 취입했던 곡을 다시 부른 버전들이 예사롭지 않은 데 기인한다. 즉, 들국화 1집에 담겨 있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나 '축복합니다' 그리고, '추억 들국화, 머리에 꽃을', 음반에 수록되었던 '사랑한 후에' 등 리메이크 곡들마저 그의 찬란한 보컬과 뛰어난 편곡, 연주 덕분에 눈부신 생명력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사랑한 후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인권의 절절한 가창과 최구희의 울부짓는 듯한 기타 연주가 또 한 번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전인권 1집 앨범 표지.
아울러 풋내기 시절 전인권이 몸담은 '따로 또 같이' 시절부터 취입해온 '맴도는 얼굴'을 '헛사랑'이라는 곡명으로 바꿔 다시 부른 것도 가장 자연스럽고도 세련되게 부른 케이스다. 이 음반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자작곡 '돌고 돌고 돌고'는 귀에 착착 감기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의미있는 노랫말, 전인권의 싱싱한 보컬, 백밴드 파랑새의 드라마틱한 연주 등은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 냈다.

더불어 전인권의 송라이팅 능력을 보여준 '사랑하고 싶어'와 '아직도'가 그것인데, 특히, '아직도'에서 보여주는 전인권과 허성욱, 최구희의 앙상블은 압권이다. 음악의 내면을 깊이 파헤치는 전인권의 보컬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최구희의 기타도 그의 생애 최고의 명연이라고 할 정도로 강렬하고 가슴 벅찬 것이다. 게다가 감수성이 풍부한 허성욱의 피아노는 아름다운 음색과 서정적인 터치로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전인권 연필 초상화. 강은백 화백 제공
끝으로 다분히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분위기의 '돛배를 찾아서'도 간과해선 안될 곡으로 여기서 전인권의 보컬과 최구희의 기타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다. 전인권의 보컬은 마음에 한번 착색되면 지우지 못하는 그런 마력이 있었다. 최성철·페이퍼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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