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주 양 어머니 37년 만의 인터뷰 "'극비수사' 개봉 후 온갖 억측… 37년 전 아픈 기억 왜 들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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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주인공 효주씨 가족 "억측 등으로 고통"

효주 양 유괴 사건을 보도한 부산일보 자매 주간지 '주간 부산' 1978년 11월 5일자 8면. 부산일보DB

"효주 양이 유괴되고 어머니는 수차례 까무라치고 링거를 꽂고 있으면서 행여나 딸의 음성이 들려올까봐 전화기에 귀를 대고 있었다. 식사 때면 '먹을 것은 주고 있는지', 밤이면 '이부자리는 덮어 주는지' 하는 걱정 때문에 수많은 밤을 뜬 눈으로 지새고 수없이 끼니를 거르며 딸의 소식을 안타까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간부산 1978년 11월 5일자 8면)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1978년 9월과 1979년 4월 한 아이를 두 번이나 잃을 뻔 했던 효주 양의 어머니(77)는 까맣게 잊고 지냈던 37년 전의 고통을 요즘 다시 느끼고 있다. 식사를 거의 입에 대지 못해 링거로 겨우 버티고 있다. 효주 양 납치사건의 수사 과정을 그린 영화 '극비수사' 때문이다. 6월 18일 개봉한 이 영화는 285만 관객을 넘겼다.

'얼마 받고 영화 제작 동의했나'
온갖 헛소문·댓글로 2차 피해
식사 못 하고 링거로 겨우 버텨

행복한 가정 이루고 있는 딸
영화로 피해 입을까 봐 걱정
가족 누구도 영화제작 동의 안 해
범인·아버지 묘사도 사실과 달라


"뭐 좋은 일이라고…, 얼마를 받고 그런 영화를 찍는 데 동의해줬냐고, 영화 상영 이후 약 한 달 동안 만나는 이웃 친지마다 이렇게 묻는 통에 부끄럽기도 하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릅니다."

효주 양 어머니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를 비롯해 가족 누구도 그 영화 제작에 동의해 준 적이 없어요." 일부 언론에서 영화촬영에 대해 효주 양 측이 동의를 해줬다고 보도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효주가 남편과 딸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한창 성장기의 손녀들에게 옛일이 알려져 혹시 피해를 줄까봐 영화화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 상영 이후 각종 뉴스와 인터넷 블로그, 댓글에서 효주 양을 둘러싼 갖가지 억측과 헛소문들이 떠돌면서 2차 피해를 입고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또 많은 언론이 1979년 4월 효주 양을 두 번째 납치했던 범인 이모 씨가 효주 양 집의 기사였다고 보도했으나, "이 씨는 탈영병이었고, 다른 곳에서 트럭운전 일을 했던 사람"이라고 그는 바로잡았다. 자신의 집 기사는 납치 유괴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고, 지금도 이웃에서 함께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집 기사를 얼마나 홀대했으면 주인 집 딸을 납치했겠냐'는 엉뚱한 유추가 그는 그저 억울할 뿐이다.

효주 양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돈을 앞세우거나 남을 낮춰 보는 성격의 사람이 아니었다고 그는 말했다.

유괴사건 해결 과정에서 형사와 도사가 소신을 지키며 책임을 다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극비수사'는 실화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은 영화와 사실을 혼돈한다.

"효주는 두 번의 유괴와 납치를 당했지만 그 어떤 정신적·신체적 피해도 입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생각도 하기 싫은 기억이거든요. 주변의 도움으로 잘 해결돼 40년 가까이 잊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왔는데 왜 이제 다시 그 악몽을 들춰내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잊힐 권리'를 주장하는 효주 양 가족은 이 영화를 연출한 곽경택 감독을 상대로 자신들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승소할 경우 배상금을 실종·유괴아동 찾기 운동에 기부하고, 영화 상영 수익금도 같은 명목으로 기부하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한편 과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실미도'를 둘러싼 명예훼손 소송에서 대법원은 "30년 이상 지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해 세부 내용이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을 인정하면 창작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며 예술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 바 있다. 이호진 기자 issu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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