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에세이] 아내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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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아내가 집을 나갔다. 그것도 한 달 동안이나.

20년의 결혼생활 동안 일주일 정도의 짧은 여행은 있었지만 이렇게 장시간 집을 비우긴 처음이다. 그간 아이들 때문에 엄두를 못 냈지만, 이번에는 큰 결심을 한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큰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 막내아들은 엄마의 부재가 걱정이다. 엄마의 밥상에 익숙한 큰아들은 먹는 문제를 걱정한다. 막내아들은 학교 숙제는 누가 봐주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외국으로 출국하여, 한 달간 나와 아이들과 이별하였다.

한 달 휴가 받아 출국 감행한 아내
큰아들, 막내아들 모두 전전긍긍
가족의 소중함은 부재가 일깨워


2005년, 처음 출판사를 시작했을 때는 일이 없어서 문제였다. 10개월이나 지나서야 첫 책이 나왔다. 하지만 이후 10년 동안 출판사를 함께 운영하면서 우리 부부는 일 속에 파묻혀 살았고 교정, 교열에 회계 업무까지 도맡아 하던 아내는 더 힘들어했다. 그러다가 출판사 10년 차를 맞이하면서 올해 처음으로 도입한 '5년 근속 한 달 유급휴가 제도'를 아내는 즉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출국 전, 자리를 비우게 될 한 달 동안의 회사업무를 미리 처리한다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전자계산서 발행 등 필수 업무 요령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아내에게 한 달 휴가를 주겠다고 했을 때는 한 보름 여행하고 돌아와 보름 정도는 집에 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아내는 인터넷으로 제일 싼 유효기간 1개월짜리 항공편을 검색하더니 한 달을 꽉 채워서 발권까지 해 버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저돌성이라니. 이제 와서 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한 달은 빠르게 지나갔고 아이들은 빨리 적응하였다. 큰아들은 스스로 먹는 문제를 해결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 자기가 먹을 빵을 샀다. 막내아들은 학교 준비물을 먼저 챙기고 필요한 것을 사러 가자고 아빠에게 요구하였다. 친구하고 논다고 정신없이 보내면서도 엄마가 부재한 자리를 스스로 채우고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렸다.

그리고 막내아들은 엄마한테 인터넷으로 편지를 보낸다. '엄마 뭐해? 나 너무 심심해 놀고 싶은데 엄마, 새로 치킨집 생긴 거 알아? 사람 진짜 많더라고. 엄마! 오늘 정말 힘들어. 그래도 자장면이랑 책이 있어서 다행이야. 엄마! 나 잘 지내고 있어.(형아 땜에 짜증 나기도 해) 나도 비엔나 가고 싶어. 나 꿈에 클래시 오브 클랜 꿈 꿨당! 요기 새로 생긴 치킨집 냄새가 완전 대박이야. 또 편지 쓸게! 근데 수학 답지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엄마, 아빠가 이상해. 엄마 빨리 왕♥.'

수학 문제를 풀 생각보다 답지를 찾는 막내아들의 메일에 엄마는 스스로 문제를 풀라고 응답한다. 목욕을 함께 가고 손톱과 발톱을 아빠가 다듬어주자 막내아들은 좋아한다. 증조할아버지 제사에 가서 절도 하고 할아버지로부터 용돈을 얻자 매우 흡족해한다. 엄마랑 보내는 시간을 더 좋아하던 아들이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아빠하고 마음을 맞춘다.

드디어 아내가 귀국하는 날이다. 딱 한 달 만이다.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비행기의 결항이 많았지만, 베이징발 비행기는 무사히 김해공항에 도착하였다.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자리에서 엄마의 부재가 만든 곤란한 한 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재미나게 전개된다. 부재로 인해 그 자리가 소중한 걸 알게 되는 가족의 모습이다. 우리는 일상을 바쁘게 보내면서 가족의 빈자리를 생각하지 못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의 소중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강수걸


산지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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