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능에 멍든 필리핀을 어루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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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외대 봉사단이 필리핀 민도르섬 망얀족을 위해 집짓기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눈부신 백사장으로 유명한 필리핀 민도르섬은 관광객들에게는 낙원이다. 수도 마닐라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바탕가스에서 다시 배를 갈아타고 1시간을 더 들어가면 도착하는 민도르섬 푸에르토 갈레라. 여기서 지프니를 타고 비포장 산길을 따라 해발 600m까지 힘겹게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바클라얀 마을 망얀족들의 삶은 낙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능프로 소개된 민도르 섬
유명해지자 리조트 건립
거주하던 망얀 족 쫓겨나

부산외대 해외봉사단 50명
집짓기 봉사로 19채 건설
마을 공동체 복원도 진행

20년 가까이 살았던 고향에서 쫓겨난 이들의 삶은 신산했다. 밀림을 헤치고 마을에 들어서자 곱슬머리에 검은 피부의 망얀족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다니고 있다. 전기와 전화는 구경조차 할 수 없고, 먹을 것이 부족해 개와 돼지들까지 비루먹은 것처럼 깡말랐다. 밀림 속에는 아직까지 집 없이 사는 사람도 제법 있다는 전언이다.

이들이 고향에서 쫓겨난 사연은 2년 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한 방송국이 명절 특집 예능 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악몽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을이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땅주인이 나타나 리조트를 짓는다며 주민들을 쫓아냈다. 순식간에 38가구, 200여 명이 집을 잃고 산중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안타까운 사연은 현지에서 20년째 망얀족을 보살피고 있는 김인효(59) 선교사를 통해 부산외대에 전해졌다. 마닐라 발라라 빈민촌에서 해마다 집수리 봉사활동을 펼쳐 오던 이 학교 해외봉사단은 2년 전부터 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망얀족에게로 도움의 손길을 돌렸다.

지난달 25일부터 대학생과 교직원으로 구성된 봉사단 50명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민도로 섬에서 봉사활동 중이다. 봉사단은 현지 목수와 함께 6개 조를 꾸려 집을 짓고 있다. 야자수와 대나무로 기둥과 서까래, 벽을 만들고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엮는 전통 방식이다. 한 채에 150만 원 남짓. 지금까지 부산외대 봉사단이 지어준 집은 유치원을 포함해 19채나 된다.

대나무공예품을 만들어 쌀로 물물교환하는 게 유일한 생계수단인 이들에겐 봉사단이 지어준 집은 축복과도 같다. 부인과 아이 둘의 가장인 데니스 솔롱카와얀(24)은 "부산외대 학생들의 도움으로 지난 1월 살 집을 마련했다"면서 "도움에 보답하고자 이번에는 나도 자원봉사자로 나서 이웃 마을주민의 집을 지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적인 것은 뿔뿔이 흩어진 망얀족들이 다시 모여들면서 공동체 복원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부산외대도 역시 집짓기를 넘어 온전한 '마을 공동체'복원을 꿈꾸고 있다.

부산외대 장병일 학생지원팀장은 "인근 공터에 유치원과 마을회관을 만들고, 향후엔 고등학교까지 세워 공동체가 자립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 민도르섬

글·사진=박진국 기자 gook72@ 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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