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전 '극비수사' 주인공, 접니다"
부산 형사계 전설 공길용 전 부산청 외사과장
기록되지 않을 뿐, 누구에게나 삶은 영화다. 영화 '극비수사'는 38년 전 효주 양 유괴사건 해결의 두 주인공 공길용(74)과 김중산(73)을 실명 그대로 등장시켰다. 전국 250만 관객을 휴머니즘으로 매료시킨 실제 두 주인공은 영화를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길용 씨는 제주도에 산다. 부산 형사계의 입지전적 전설로 통하는 그가 지금은 꽃과 나무를 키우며 자연을 벗 삼고 있다.
부산 영화 '극비수사' 모델
공길용 전 부산청 외사과장
"경찰의 일은 업 중에 덕업
후배에게 메시지 전하려고
실명으로 영화화 수락했죠"
"참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네요. 이제 갈 날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동료들도 참 세상을 많이 떠났죠. 내가 얼마나 업(業)이 많았으면…. 아내가 꽃과 나무를 좋아해서 2009년 제주도에 왔어요. 이제 나도 덩달아 자연에 대한 감각이 조금 열리는 것 같아요."
따지고 보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경찰의 일은 업 중에 덕업(德業)이다. 그의 덕업 가운데 효주 양 유괴사건이 영화 '극비수사'로 만들어졌다. 5일 현재 250만이 넘는 관객이 공길용과 김중산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곽경택 감독이 저와 중산의 이름을 실명으로 쓰자고 사정을 하더라고요. 후배 경찰들이 '형사 수사업무만큼은 공 선배 이름을 그대로 써도 좋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형사가 나오겠습니까' 이러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 영화가 후배들에게 뭔가 전하는 메시지가 될 것 같아 좋다고 했지요."
공 씨가 밝히는 메시지는 휴머니즘, 소신, 사명감, 공감이다. 다른 경찰이 효주 양이 사실상 숨졌을 것으로 보고 범인 검거에만 몰두할 때 공길용은 살아있을 작은 가능성에 집중했다. 조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피해자와 그 가족이 상처받지 않는 길을 택했다.
처음엔 효주 양 가족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갈까 봐 영화화를 반대했으나 38년이나 지난 일이고, 피해가 없도록 주의해서 만들겠다는 약속을 듣고야 시나리오 작업을 도운 그다. 경찰뿐 아니라 성과와 실적만 재촉 받는 현대인들에게 이 영화가 주는 울림은 적지 않다.
"영화를 보면서 38년 전 그때 상황이 생각 나 다시 막 흥분됐어요. 효주 양 가족들이 고통스러워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거예요."
약 40년 전 피해자 가족의 아픔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공감능력 뛰어난 형사에게 좋은 인연은 저절로 따라왔다.
"효주 양 삼촌이 양과점을 했어요. 주변 불량배들이 가게에 와서 계속 해코지를 한다기에 찾아가 다시는 못 괴롭히도록 해줬죠. 그게 인연이 돼 효주 양이 유괴되자 그 삼촌이 저를 찾아온 거예요."
'효주 양을 구할 사람은 공 형사밖에 없다'고 공 형사를 강력히 천거한 중산은 그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등에 쌍칼을 찬 팔자요. 타고난 경찰이란 말이요. 경무관까지 할 테니 두고 보시오."
경찰학교 졸업 후 형사과 순경으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강력사건을 잇달아 해결하며 경장부터 경감까지 무려 4계급을 잇달아 특진한다.
명퇴를 선택하면 경무관으로 승진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마다하고 부산경찰청 외사과장(총경)으로 2002년 정년퇴직했다.
"그땐 제 일이 정말 보람 있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후배들은 시민의 공복으로 일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보람 있는 시간인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소신을 펼친다면 누구나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공 씨의 삶은 웅변하고 있다.
이호진 기자·부일영화연구소 부소장 ji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