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왜 2030 남성은 여성을 혐오하게 되었나?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경쟁에 지친 젊음, 시스템 대신 이성에게 칼을 겨누다

인터넷 하위문화에서 나타난 혐오콘텐츠는 사회와 일상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아들, 딸 구별 없이 교육시켰다. 현재, 대한민국의 40∼50대는 딸을 그렇게 키웠다. 위 세대와 달랐다. 장남을 위해 여동생은 대학을 포기해야 했던 시절은 끝이 났다. 고시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이 많아졌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도 가파르게 높아졌다. 활발하게 사회생활 중인 딸들을 보며 중장년층 세대는 '우리 딸은 우리보다 평등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부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여성 비하 발언은 '김치녀'로 명명되었다. '한국 여자들은 남자의 경제력만 따진다'를 범주로 '밥을 먹고 계산을 안 하고 나가더라', '처음 만났는 데 차가 있는지 물어보더라'라는 상황에 파생되었다. 김치녀는 2005년 만들어진 '된장녀'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 된장녀는 5천 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허세 있는 여자를 뜻했다.

'김치녀'로 명명된 여성 혐오
온라인 점령 후 곳곳에서 논란
2030 대상 '여성혐오' 설문
응답자 92.7% "접한 적 있다"

극심한 경쟁에 내몰린 청년층
희생양 찾듯 이성에게 한풀이

김치녀에서 출발한 여성혐오는 인터넷 하위문화에서 멈추지 않았다. 한 칼럼니스트는 칼럼에서 페미니스트가 싫어 IS(이슬람 무장단체)에 합류하려했던 김 모 군을 거론하며 "현재의 페미니즘은 뭔가 이상하다. 무뇌아적인 남성보다 더 무뇌아적이다"라고 썼다.

개그맨 장동민 씨는 팟캐스트를 통해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것"이라는 말을 했고, 한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해 여성 출연자를 지칭하며 "설치고, 말하고, 생각해서 싫다"고 말했다.

또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모텔로 끌고 가는' 내용이 담긴 '상남자 웹툰'은 페이스북에서 1천 회 넘게 공유되었고, 웹툰 채널 '레진코믹스'에 연재되는 '레바툰'에도 비슷한 내용의 만화가 그려졌다가 네티즌들의 반발로 수정되었다.

이를 두고 2030 세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보기 위해 6월 24일부터 30일까지 전국 대학가 강의실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 혐오 콘텐츠를 접해 본 적이 있는지,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평등 인식을 묻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317명(남성 218명, 여성 109명) 중 92.7%가 김치녀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 51.6%는 최근 1주일 동안 대중매체와 일상생활에서 여성 비하나 여성 혐오를 다룬 콘텐츠를 접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의 답은 성별에 따라 극명하게 나누어졌다. 먼저, 남성 응답자의 48%는 이러한 콘텐츠에 대해 '때때로 통쾌함과 재미를 느끼지만 여성 혐오 자체에는 반대한다'고 답했다.

남성 응답자의 22%는 '문제의식을 느끼며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확대 및 재생산을 막아야 한다'고 답했다. 또 이들 중 7%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것들이라 통쾌함과 재미를 느낀다고 답했다.

이러한 콘텐츠를 '포털사이트나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여성 응답자 83%가 '규제해야 한다'고 답한 데 반해 남성 응답자의 60%는 '규제할 필요가 없다'고 답해 규제에 대한 입장 차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장 차는 어디서 출발한 걸까. 남성 응답자인 대학생 유정호(26) 씨는 "사실 남자들끼리 마초적인 농담을 주고받던 것을 TV나 인터넷으로 보는 것뿐"이라며 "일정 정도를 넘으면 남자들도 거북해서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여성 응답자인 직장인 성경진(27) 씨는 "그런 만화를 보다가 여동생이나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고 문자를 나눌 텐데, 자기도 모르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남성과 여성이 '양성 평등'에 대해 인지하는 것에도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상호 관계를 묻는 질문에 남성 응답자의 70%는 '남성이 여성보다 대체로 책임은 많고 혜택은 적다'고 느꼈다는 반면 여성 응답자의 42%는 '여성이 남성보다 책임은 많이 지고 혜택은 덜 받으며 그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양성 모두 각자의 성이 더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취업 준비생 유정연(26) 씨는 "남자, 여자가 대학에 입학하는 수도 비슷하고 졸업하는 숫자도 비슷한데, 기업은 채용할 때 남성을 더 선호한다. 취직 이후에도 여성이란 이유로 경력이 단절되거나 승진에서 밀리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여성학을 강의하는 오정진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과거 70년대, 80년대 때는 양성 평등을 논하고,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게 청년 지식인의 척도였다"면서 "청년들이 내부적으로 극심한 경쟁에 휘말리면서 반대급부로 타자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인종이나 성별처럼 쉽게 눈에 띄는 요소를 찾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좁디좁은 내부 경쟁 속에서, 큰 구조를 지탄하기보다는 가까운 타자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우리 딸은 우리보다 평등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조소희 기자 ss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