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일렁이자 세상도 꿈틀거렸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루이 암스트롱의 주력 소비자층은 백인이었다. 그는 단 한번도 백인 지배의 질서에 저항한 적이 없다. 돌베개 제공

8명이 똑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는 데 한 치의 오차가 없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외모와 정확한 동작은 마치 인형이나 기계 같다. 대중이 원하는 웃음과 인터뷰 모범 답안까지 반듯하게 소화해내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어깨 위에 올려진 무게감이 브라운관 너머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종종 신해철이 그리워진다. 뚜렷한 자기색과 명확한 주관, 가끔씩 선보이는 괴상한 복장과 취향까지. 그의 음악적 성취만큼이나 모남의 멋들어짐을 좋아했다.그는 무거운 세상 따위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툭툭 찔렀다.

20세기 유행한 재즈·로큰롤
흑인·청년 포용한 美 사회 반영

1960~70년대 한국 통기타
혁명적 낭만주의 대학문화 영향

'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에선 음악의 변곡점을 다룬다. 일상에 음악이 함께 하듯, 음악이 덜컥 일렁인 순간에 대중도 세상도 함께 일렁였다. 책은 전복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20세기 초·중반 미국을 뒤흔든 재즈와 로큰롤은 미국의 질곡과 번영을 보여줬다. 흑인음악이었던 재즈가 스며들고, 젊은이들이 로큰롤을 외칠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미국이 흑인과 청년이라는 마이너리티를 끌어안았다는 뜻이다. 물론 이 경계에는 흑인의 문제에 침묵하고, 전쟁에 최전선에서 미국 문화를 전파한 '명예 백인'인 루이 암스트롱이 있었다. 미국 사회가 젊은이들의 발산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 데에는 세련된 양복에 폭이 좁은 넥타이, 순수한 얼굴과 옷차림을 한 비틀스가 있었다.

서정적인 가사와 두 개의 기타로 반주된 양희은의 '아침이슬' 앨범의 표지.
미국에서 로큰롤이 유행할 때, 한국 청년들은 통기타로 노래를 불렀다. 1960년와 70년대 우리 청년들도 자유와 해방을 외쳤지만 당시 한국 사회에서 엠프와 마이크를 구입할 수 있는 대학생은 많지 않았다. 또 1980년 광주의 경험을 겪으면서 반미가 화두로 떠올랐고, 제 아무리 레드 제플린이라도 한국 대학가에 주류가 될 수 없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은 현실과 끝없이 타협해야 하는 엘리트의 일원이면서도 기존의 기득권 세력의 비민주적인 전횡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길을 새롭게 모색해야 했던 혁명적 낭만주의자들이었다. 아름다운 가사에 두 개의 기타로 반주된 '아침이슬'이 대학가 곳곳에서 널리 불린 이유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 / 강헌
이렇듯 저자는 사회와 음악을 꿰맨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동 모짜르트와 악성 베트벤'도 마찬가지다. 모차르트는 궁정에서 권력가들에게 아부하면서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모짜르트가 살던 시대엔 귀족이나 궁정의 후원 없이 음악가로서 독립적인 삶을 꾸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베토벤이 살던 시대는 달랐다. 공화주의자가 유럽 전체를 휩쓸었다. 베토벤은 공개 연주회와 악보 출판을 통해 당시 유럽의 중심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며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첫번째 예술인이었다. 예술인의 업적은 태어난 재능이나 개인의 노력 여부만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끈끈이 매여있다.

정치적·문화적 자장과 맞물려 음악사는 달라졌고 이 음악과 함께한 대중의 삶도 변화했다. 음악도 '시장'이 되어버린 건, 우리 삶과 멀지 않다. 또 신해철이 생각난다.

강헌 지음/돌베개/357쪽/1만 5천 원. 조소희 기자 ss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