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제 구원투수'의 금융위기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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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사진 왼쪽) 미국 대통령과 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끊임없이 소통하며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해냈다. 사진은 2012년 4월 백악관 집무실에 마주앉아 논의중인 두 사람. 인빅투스 제공

책 속 흑백 사진 한 장이 훅 눈길을 끈다.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남자. 백악관 집무실 책상 앞 의자에 다리를 꼬고 기대앉은 오바마 대통령이 상대의 말을 골똘히 듣고 있다. 책상 옆 또 다른 의자엔 한 남자가 역시 다리를 꼬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대통령과 '맞짱 뜨고 있는' 남자는 티모시 가이트너 당시 재무장관이다.

티모시 가이트너 美 재무장관
'월街의 경호대' 국민 비난 속
최악 경제 상황 되살린 기록
경제 위기 맞은 한국 '타산지석'


그 나라에선 익숙한 풍경일 수도 있는 장면. 이 사진 안에서 오고 갔을 막역한 대화 내지 소통이 못내 부럽기만 하다. 장관들이 대통령과 1대 1 대면 보고를 하긴 커녕 눈도 못 맞추는 나라.(전문가도 아닌데 장관으로 덜컥 임명해준 대통령이 너무 고마워 그럴 수도 있겠다.) 국무회의 때마다 '대통령 말씀' 받아쓰기만 하는 나라에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장면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테스트/티모시 가이트너

문제의 사진은 리먼 브라더스 발 후폭풍으로 세계 경제를 휘청대게 했던 2008년 금융위기를 미국이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009년 1월. 1주일 먼저 백악관에 입성한 오바마 대통령은 47세의 젊은 재무장관 티모시 가이트너를 맞이한다. 그들은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금융위기'를 진압하고 경제를 살려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그렇게 함께 진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4년간 재무장관을 지낸 티모시 가이트너가 직접 쓴 '금융위기 탈출 경제역사서'다. 우연히 역사의 길에 들어서 난국의 선봉장이 된 재무장관. 국민에겐 '월가의 경호대'로 비난받고, 월가에선 '양복 입은 체 게바라'로 몰리며 집중포화를 맞았지만 결국 그는 미국 경제를 대재앙에서 건져냈다.

인재를 알아본 오바마의 선택은 탁월했다. 가이트너는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하고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운용하는 컨설팅 회사를 다니며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길렀다. 30대 중반엔 재무부 국제금융담당 국장으로 로버트 루빈 장관과 래리 서머스 차관 같은 뛰어난 인물들과 손발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1997년 아시아 통화위기와 1998년 헤지펀드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 파산사건을 겪는다. 이런 경험들이 그를 10년 후 들이닥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헤쳐 나갈 준비된 주자로 길러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엔 뉴욕연방준비은행장으로 행크 폴슨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함께 시시각각 다가오던 세계 경제의 붕괴를 막아냈다. 
미국을 제2의 경제 대공황 위기에서 구원해낸 티모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 하지만 그는 "경제를 살려냈지만 민심을 잃었다"고 했다. 부산일보DB
재무장관이 된 가이트너는 "월가가 사고를 쳤지만, 판을 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여론은 "월가의 도덕적 해이를 처벌해야 한다"고 분노했다.

가이트너는 외과의사와 금융위기 관리자의 대응을 비교해 설명한다. 진단과 대응, 예방과 치료, 환자 분류와 수술이란 과정이 비슷하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 역시 같다.

반대는 극심했고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미국 경제는 결국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했다. 가이트너는 금융회사의 재무제표를 검토해 최악의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추가 필요자본을 계산하고 이를 확충하도록 하자고 했다. 자본 확충은 금융회사 스스로 하지만 안 되면 정부가 나서기로 했다. 시장 패닉을 막는데 초점을 맞춘 조치였고 '거대한 화재'는 진압됐다.

가이트너는 장관 재임 기간 동안 미국의 금융제도 전반을 가다듬고, 금융소비자보호 정책을 만드는 공도 세웠다.

책이 바다 건너 나라의 '경제 위기 탈출기'에 그친다면 좋으련만. 위태롭기 그지없는 2015년 대한민국 경제에 던지는 교훈이 가볍지 않아 마음을 무겁게 한다. '빚내서 집 사라'는 빚 권하는 정부 때문에 한국의 가계부채는 무려 1천100조 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시한폭탄 같은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가 터진다면 2008년 세계를 강타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에 이어 '초동대처 실패' '컨트롤 타워 부재' 같은 단어를 금융위기라는 대재앙 속에서 또 다시 듣게 되는 일만은 제발 없었으면. 티모시 가이트너 지음/김규진 외 옮김/인빅투스/664쪽/2만 5천 원.

강승아 선임기자 se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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