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BIFF, 뜨거웠던 순간들] 26. 프로젝트 마켓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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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활' 봉준호의 '설국열차'도 들러야 했던 그 '시장'

지난해 벡스코에서 열린 APM 미팅 현장 모습.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부산국제영화제는 1998년부터 프로젝트 마켓을 운영해 오고 있다. 지금은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이지만, 초창기에는 부산프로모션플랜(PPP·Pusan Promotion Plan)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마켓이었다. PPP가 APM으로 바뀐 이유는 2000년 정부의 로마자표기법이 개정되면서 '부산'의 영문표기가 Pusan에서 Busan으로 바뀌어서다.

1998년 아시아 최초 운영
프로젝트 소개 후 자본 유치
BIFF 위상 단기간에 높이며
부천영화제 등 국내 비롯
해외영화제 마켓 설립에 영향

APM 참가 뒤 완성된
'플랫폼' '괴물' '쓰리타임즈'
흥행 성공에 영화제 수상도


부산영화제는 로마자표기법이 개정된 이후에도 몇 년간 Pusan을 고수하였으나, 영화의전당 개관을 기점으로 부산의 영문 표기를 Busan으로 바꾸었다. 부산영화제가 PIFF(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로 바뀌었지만, PPP를 BPP로 바꾸는 것은 너무 어색하였다. 완전히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기로 하고 '아시아프로젝트마켓'을 새 이름으로 정하였다. APM의 제안자는 1998년 당시 박광수 부집행위원장이었다. 박광수 감독은 로테르담영화제의 '시네마트'를 참관한 경험이 있었고, 이를 부산영화제에 도입하자고 주장해 관철시켰다.

APM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과 역할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성공적인 사업으로 국내외에서 평가받고 있다.

프로젝트 마켓(Project Market)은 프리 마켓(Pre-Market), 혹은 합작 마켓(Co-Production Market)이라고도 불리는데, 기본적으로는 완성 전의 프로젝트를 투자자에게 소개하고 자본을 유치하는 행사이다. 때로는 촬영이 끝나고 후반작업을 남겨 둔 작품이 소개되기도 한다.

프로젝트 마켓의 원조는 IFP(Independent Filmmaker Project)마켓이다. 1979년 뉴욕에서 시작된 IFP마켓은 미국 내 독립영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프로젝트 마켓으로 시작하였고, 1995년에 'No Borders'라는 이름의 국제 프로젝트 마켓으로 거듭났다. 

2001년 김기덕 감독은 `활`로 부산상 등 2개 부문을 수상했다. `활`은 2005년에 완성되어 칸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하지만, 세계적으로 프로젝트 마켓을 널리 알린 것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의 '시네마트'였다. 1984년에 탄생한 '시네마트'는 출범 당시부터 범세계권 프로젝트 마켓을 지향함으로써 투자처를 찾는 많은 세계 영화인이 주목하였고, 그 놀라운 성과로 인해 로테르담영화제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1994년에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IFFCON(International Film Financing Conference)이 시작되었다.

아시아에서는 1996년에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최초로 1998년에 프로젝트 마켓 APM(당시 PPP)을 시작하였다.

'시네마트'가 범세계권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한 반면 PPP는 아시아권 프로젝트만을 대상으로 시작하였다. APM 역시 지역 중심이라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곧 안착하였다. 많은 아시아의 프로젝트가 APM을 찾기 시작하였고, PPP를 거쳐 간 작품 중에는 메이저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뚜렷한 성과를 보였다.

PPP의 성공은 아시아권의 여타 국제영화제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홍콩영화제가 2000년에 HAF(Hong Kong-Asia Film Financing Forum)를 출범시켰고, 도쿄영화제는 2005년에 TPG(Tokyo Project Gathering)를 출범시켰다(지금은 ACE Co-Production Lab으로 개칭). HAF와 TPG는 APM과 똑 같은 콘셉트의 프로젝트 마켓이었지만, HAF는 중화권 프로젝트에, TPG는 일본 프로젝트에 좀 더 중점을 두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프로젝트 마켓의 창립 붐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서도 2008년 부천영화제의 It Project, 2009년 전주영화제의 JPM이 출범하였다.

APM 프로젝트 중에는 이후 완성이 되어 비평과 흥행에서 성공한 작품이 많이 배출되었다.

2000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지아장커 감독의 '플랫폼', 2000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순환', 2001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 2005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쓰리 타임즈', 2006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초청작인 봉준호 감독의 '괴물', 2008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 2009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차이밍량 감독의 '얼굴', 2010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이창동 감독의 '시', 2013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등이 APM 이 배출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처럼 오늘날 거장의 반열에 오른 수많은 아시아의 감독이 갓 데뷔하였던 시절에 APM을 통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2012년 벡스코에서 열린 APM 미팅 현장 모습.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APM은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초청 프로젝트의 제작자 혹은 감독과 투자자들과의 미팅이 계속 이루어지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였다.

2012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APM 게스트였던 터키의 외즈칸 알페르 감독은 부산에서 체류하는 기간 내내, 한국 음식에 적응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미팅을 잘 마치고 출국하려던 10월 12일 당일 오전,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면서 현장에 있던 스태프에게 복통을 호소하였다.

하지만 출국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복통을 참아가면서 김해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 국제청사에서 이스탄불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복통이 심해져 앉아 있을 수조차 없게 되자, 항공사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인천의 인하대학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되었다. 검사 결과는 급성충수염(맹장염). 그날 밤(10월 12일), 바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이 터키에서 급히 날아와 남편을 돌보기도 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고, 사흘 뒤 퇴원하여 무사히 출국하였다.

우리 영화제의 APM 스태프들은 행사를 잘 마친 뒤, 그야말로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후 항공사와 부산영화제에 감사의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외즈칸 알페르 감독의 당시 프로젝트 '바람의 기억들'은 2014년 칸영화제의 '아틀리에'에 초청되어 보다 많은 투자자와 만났고, 올해 제작이 진행될 예정이다. 올해 완성 된다면 우리 영화제에서 상영을 하고, 외즈칸 알페르 감독이 작품과 더불어 맹장염에 관한 이야기도 관객들에게 들려주기를 바란다.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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