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한·일은 서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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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 동서대 총장

지난 22일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었다. 그러다 보니 양국 관계를 조명하는 국내외 학술회의가 이번 달 내내 열리고 있다. 필자도 지난 한 달 사이 세 군데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초청 받아 다녀왔다. 특이하게도 양국에서 온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은 서로 필요한가'라는 우문과 같은 주제를 놓고 태연히 토론하고 있었다. 작금의 악화된 한·일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음이 틀림없다. 회의 석상에서 한 전문가는 요즘 양국에서는 "한·일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해서 서로 불편한 것이 뭐 있느냐"며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자"는 여론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은 이제 서로 필요 없는 존재가 된 것일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관계 악화돼도 불편한 것 없다,
이대로 내버려 두자" 여론도

싫든 좋든 이웃,이사 못 가는 운명
감정적 대립은 실리 해쳐

위안부 문제는 글로벌 차원 승화
미래지향적 관계에 관심을


우선, 한국과 일본은 싫든 좋든 지리적으로 이웃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아무리 싫어도 이사를 갈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런 이웃사촌과 담을 쌓고 지내면 서로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 관광객이 줄어드니 서민 경제가 힘들어지고, 한류 전파도 주춤해지고 있다. 일본 내 혐한 분위기가 더 확산되면, 한국인의 방일도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감정적 대립이 실리를 해치는 것이다.

또한, 한·일이 서로 갈라서면 양국은 국제정치의 험난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현실적으로 한·일은 어쩔 수 없이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 같은 현실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르지만 냉엄한 국제사회에서는 여전히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한·일과 각각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양국 간의 지속적 반목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직·간접적 압력은 곧 무시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치달을 것이고, 결국 한·일 양국은 '울며 겨자 먹기 식' 타협을 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최근 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타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다. 양국 간의 논쟁이 외압에 의한 인위적 타협으로 귀결된다면 그간의 과정이라는 것은 한낱 낭비적 소모전에 불과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일이 반목하면 중국은 동북아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한국을 중국에 묶어 두고, 일본과는 전략에 따라 접근과 경시를 반복할 것이다. 최근 한국의 '중국 경사론'이 워싱턴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것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고 보아야 한다.

한·일 관계가 계속 악화되면, 한국의 통일 과정 또한 험난해질 수밖에 없다. 남북통일은 한국이 중심이 되어 틀을 짜 나가야 하는데, 양국 관계의 악화는 정책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과 북한 사이에는 납치자 문제라는 연결고리가 있다. 특히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권을 잡은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북·일 대화를 성사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한국과의 정책 조율 없는 북·일 접근이 시작되면, 한국의 대북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한국이 배제된 일본의 대북 접촉 시도 또한 결코 좋은 성과를 이끌어내기 힘들다.

그렇다면 양국이 갈등을 극복하고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양국 간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일이 협력하여 글로벌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피해 할머니 문제가 일본 정부로부터 '억지' 사죄와 배상을 받아 내는 정도로 종결된다면, 이는 피해자들의 애통한 희생을 극히 왜소화시키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위안부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양국 갈등의 불씨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양국 간 해결과 더불어 한·일이 공동으로 '전시(戰時) 여성 인권 보호를 위한 국제기구' 같은 것을 만들어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지구촌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앞장서는 것이다. 그래야 할머니들의 희생이 시대적 의미를 가지게 되고, 마침내 위안부 문제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둘째, 양국의 정부, 정·재계, 민간이 참여해 가칭 '한·일 공동 미래비전'을 도출해 낼 필요가 있다. 양국은 가까운 장래에 유사한 국가적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급격한 인구 감소, 노령화, 에너지 부족,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안정 등 양국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한·일 양국이 머리를 맞대어 공동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갈 때 서로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될 것이다.

한·일은 때로는 반목하더라도 결국 서로 협력을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여, 양국 지도자들에게 과거보다는 좀 더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간곡히 촉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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