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하천 20년, 방향 잃은 물길 1부] 6. 생태 없는 생태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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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해야 한다" "모기 꼬인다"… 사람 욕심에 무너진 복원 철학

지난 5월 부산 사상구가 구덕천 수풀을 잘라 버린 모습. 이 때문에 하천의 식물 종 다양성이 훼손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재찬 기자 chan@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해 현재까지 복원된 부산의 생태하천은 과연 생태적으로 복원됐을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형태부터 생태계의 큰 흐름을 놓친 하천이 있다. 일부 생태 하천은 사람 위주의 공간으로 꾸며졌다. 종 다양성이 오히려 악화되며 생태는 무너졌다. 일부의 경우 행정기관의 하천 관리 자체가 오히려 생태계를 위협하기도 한다.

온천천 수생 식물 자리에는
관상용 꽃·체육시설만 가득
"모기 소굴 된다" 주민 성화에
학장천선 수풀 수시로 베어내

자연 상태 복원에는 관심 없고
편의 앞세워 '무늬만 생태하천'
생태계 다양성은 되레 무너져

■600억 들였는데 물고기 쉴 곳은?

부산시 낙동강사업본부(현 낙동강관리본부)는 지난 2010년 8월부터 2013년 6월까지 사업비 673억 원을 들여 사상구 삼락천(낙동강살리기 43공구)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했다.

공사 완료 뒤 낙동강 물이 삼락천에 유입되면서 상류에서 붕어, 잉어, 모래무지, 치리, 끄리 등의 물고기가 발견됐다. 주민들은 "죽은 하천이 되살아났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금 삼락천에는 물고기가 그늘을 피하고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아보기 힘들다. 수초가 거의 없어 물고기가 산란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류로 내려간 물고기들은 살아가는 것조차 어렵다. 중금속과 생활하수로 오염된 퇴적층으로 수질 악화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생태하천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하천을 최대한 자연하천의 형태로 만들어 자정능력을 갖추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삼락천의 경우 오니토를 걷어낸 뒤 깨끗한 모래로 갈아주는 것이 급선무다.

여기에 물길을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곳곳에 여울·소(沼) 등 생태서식 공간을 조성한다면 '금상첨화'라는 것.

부경대 생태공학과 이석모 교수는 "삼락천은 원래 자연하천이 아닌 수로였지만 인공적으로 물길을 구불구불하게 하고 수초를 식재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면서 "부산에서 생태하천 사업을 벌인 곳 중 자연의 모습과 흡사하게 복원된 하천이 드물다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인간에 점령당한 생태하천

도심하천 온천천은 부산에서 생태복원을 위해 가장 많은 비용이 투입됐다. 겉으로는 녹색 빛이 가득한데 속은 '진짜 생태'와는 거리가 멀다.

금정구 부곡동 부곡교 아래. 강변 산책로 옆으로 형형색색의 관상용 꽃이 자라고 있다. 지역 자생단체에서 구역을 나눠 관리하는 꽃밭이다. 수생식물의 자리를 사람이 빼앗은 격이다.

온천천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갈수록 이런 사정은 심해진다. 둔덕 경사면은 조경용 나무와 식물로 채워졌고, 둔치는 잔디밭으로 정비됐다. 하천이 아닌 '정원'이 돼 버렸다.

하천변에는 친수시설이 마구잡이로 들어섰다. 이때문에 생태하천이 아닌, 체육공원처럼 보인다.

금정~동래~연제를 흐르는 온천천 상·하류 12km 구간을 통틀어 배드민턴장 17개, 족구장 2개, 농구장 8개, 인라인스케이트장 3개, 물놀이장 1개 등 무려 31개의 운동장이 있다. 철봉, 평행봉 등 체육시설도 21곳에 이른다.

무늬만 생태를 표방했을 뿐, 하천 유역 전체를 인간이 점령해버린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게 내준 자투리땅에는 갈대와 억새가 자랄 뿐이다. 식생의 다양성은 이미 사라졌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주기재 교수는 "온천천에는 구간별로 강폭이 좁아졌다가 넓어지고 수심이 얕았다가 깊어지는 자연 하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며 "생태 전문가의 자문 없이 예산에 맞춰 공사업자에게 복원 공사를 맡긴 결과"라고 지적했다.

■말은 '관리', 실상은 '생태 훼손'

지난달 22일 사상구 학장천과 구덕천 둔치. 어른 키만 했던 무성한 수풀은 바리깡에 밀린듯 가지런히 깎였다. 사상구가 20여일간 관리를 한 결과다.

학장천에는 남은 풀이 거의 없고, 구덕천에는 갯버들, 갈대, 억새만 겨우 살아남았다.

구에서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학장천과 구덕천, 삼락천의 수풀을 제거해 왔다. 구가 하천변의 풀이 자라기 무섭게 잘라내는 것은 모기가 들끓는다는 민원 때문이다.

구청의 이 같은 해명에 환경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보통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는 고여 있는 물에 생기고, 수풀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모기 잡겠다고 수풀을 마구잡이로 베어내지만, 결과적으로 하천의 종 다양성만 훼손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풀이 어느 정도 있어야 다양한 곤충과 양서류, 파충류들이 알을 낳고 살 수 있다.

또 비행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조류도 하천변 수풀에 숨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학장천살리기주민모임 강미애 대표는 "수풀을 통해 촘촘해진 먹이사슬이 모기 유충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면서 "풀베기보다도 하천변 식생조사를 벌여 어떤 종들이 살아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구청이 해야 할 더 시급한 일이다"고 꼬집었다.

특별취재팀 river@busan.com


특별취재팀 : 박진국, 김백상, 황석하,이대진, 장병진 기자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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