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기자의 피플&] '비뇨기과 여의사로 산다는 것' 이경미 부산의료원 비뇨기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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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음은 진심일까요? 서로 솔직한 게 건강한 性이랍니다"

이경미 과장은 "섹시함은 당당함의 또 다른 이름"이라며 매사에 자신감이 있으면 그 자체로 섹시하다고 강조한다. 정대현 기자 jhyun@

"여자 비뇨기과 의사가 성(性) 관련 칼럼을 쓴다니까 처음엔 대부분 호기심에서 봤겠죠. 그런데 에두르지 않는 직접적인 표현에다 '카더라 통신'이 아닌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실제 사례를 많이 인용해 설명하니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적절히 가미한 재미있는 비유가 감초 역할을 한 것도 주효했을 겁니다."

6년간 본보'위풍당당 성교실' 연재
칼럼 엮은 '착각하는 남자…'도 출간
"인기 비결? 솔직한 내용·참신한 비유
칼럼 읽고 병 나은 노년층 볼 땐 기뻐"

부산 비뇨기과 여성 전문의 '1호'
레지던트 시절 진료 거부한 남성도

"여성도 성적 자립이 필요한 시대,
소통하는 건강한 성생활, 삶의 활력"


지난 2008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6년간 본보에 매주 한차례 '위풍당당 성교실'을 연재해 큰 인기를 끌었던 이경미(40) 부산의료원 비뇨기과 과장. 부산 지역 여성 비뇨기과 전문의 1호다.

최근 칼럼을 재구성한 책 '착각하는 남자, 고민하는 여자'를 발간했다. '그녀의 신음소리는 100% 진심일까'라는 도발적인 부제가 붙어 있다. 지난 11일 연제구 부산의료원 비뇨기과 진료실에서 만났다. 웃음소리가 유쾌하다.

"남한테 말하기 부끄러워 그냥 속앓이만 했는데 제 칼럼을 읽고 '바로 내 이야기'라며 용기를 내 찾아오는 어르신이 초창기엔 많았습니다. 외음부 가려움증·성생활 중 배뇨문제 등 실례를 든 칼럼이 나갔을 때는 예외없이 관련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이 몰려왔지요. 대부분 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치료를 통해 호전된다니까 찾아왔다고 그러더군요."

이 과장은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성에 대해 드러내 놓고 말하기보다 참고 숨기며 피해 왔던 게 현실"이라며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그저 민간 속설에 의존하게 되고 병을 키우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고 강조한다.

환자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알려야 겠다는 생각에서 칼럼을 쓰게 됐다고 설명한다. 인기가 제일 많았던 칼럼을 물어 봤다.

"60대 이상 환자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행복한 성생활, 나이는 숫자일 뿐' '나는 죽을 때까지 섹스하고 싶다' 등 노년층의 성생활에 대한 글이 반향이 컸습니다. 용기를 얻었다고 팬레터를 보내시는 분도 계셨지요. 4회에 걸쳐 성 강좌도 개최했는데 신문 칼럼을 책으로 만들어 와 사인을 받아 가기도 했습니다."

이 과장은 솔직한 내용과 참신한 비유가 장수 칼럼이 된 이유일 거라고 자기 나름대로 분석한다. KTX로 빗댄 혼자 질주하는 남성을 비롯해 '양은냄비 남자, 뚝배기 여자' '애무가 의무가 될 때' '이율배반적인 오르가즘' '여자의 그곳도 윤활유가 필요하다' '365일 색(色)다르게' 등이 그런 칼럼이다. 남성 환자는 얼마나 올까.

"남녀 환자의 비율은 50 대 50입니다. 보통 남성 환자가 70~80% 정도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저에게는 여성 환자가 많이 오는 편이지요. 우리 사회가 아직도 비뇨기과는 남성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여성들은 비뇨기과 질환을 앓아도 대부분 산부인과를 가거나 참는 경우가 많지요. 사각지대에서 방치되는 여성 환자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이 과장은 고령화 시대가 될수록 비뇨기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다. 여성 비뇨기과 의사가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남성은 전립선 비대증, 요로결석, 성기능 장애 순으로 비뇨기과를 많이 찾고 여성은 방광염, 과민성 방광, 복압성 요실금 순으로 많이 찾는다고.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질환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2010년 '위풍당당 명품 성강좌' 당시 모습. 부산일보DB
"요즘 의과대학을 보면 비뇨기과 지원율이 가장 낮습니다. 10년 전 제가 다닐 때만 해도 경쟁률이 높았는데 이젠 개업해 봐야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비아그라 출시가 한 원인이라고 하더군요. 학회서는 수가를 올리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지요. 비뇨기과 의사가 부족한 시대가 곧 올 겁니다."

이 과장은 본래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 의대를 지원했다고 말한다.

중·고교 시절,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추리소설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 영향을 받았다고. 그런데 막상 실습을 돌다 보니 병실 환경이나 치료 과정이 오래 걸리는 등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비뇨기과라는 학문에 끌렸단다. 일단 재미가 있었고 치료 성과가 빨리 나타나는 게 흥미진진했다고.

"결정적인 이유가 또 있었죠. 의대 3학년 때 실습을 도는데 수많은 여자 환자를 다 남자 의사가 진료하는 거예요. 왜 여의사는 한 명도 없을까 의아했습니다. 한번 도전해 보자 결심했지요. 당시엔 비뇨기과 여의사가 전국에 4명밖에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2005년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현재 부산엔 전문의 2명, 레지던트 1명이 있다. 비뇨기과 여의사는 3명인 셈이다. 전국적으로는 30여 명이다. 초창기 레지던트 시절엔 남성 환자들이 진료 받기를 거부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전립선 비대증 환자의 초음파 검사를 위해 기계를 항문으로 넣어야 하는데 여의사라고 거부해 검사를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땐 또 응급실 당직만 서면 하필 지속발기 환자가 많이 와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비아그라 출시 전이었는데 보통 발기부전 주사치료제 부작용으로 오는 경우지요. 참다 참다 보통 새벽 2시께 병원으로 오는데 피를 빼야 조직이 괴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날밤 새우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 과장은 2007년 부산의료원 과장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도 어려움이 좀 있었다고 말한다. 주로 남성 환자들이 진료실에 들어왔다가 여자 의사를 보고는 잘못 들어 왔나 다시 나가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단다.

"부모님은 비뇨기과 지원에 대해 '네가 현명하게 선택했을 거라고 믿는다'며 제 의견을 존중해 줬지요. 의대 동기인 남편과 친구들도 잘할 거 같다는 반응이었어요. 성격이 털털하고 쿨해서 그런가 봐요." 이젠 호기심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는 전문의가 되고 싶다고 강조한다.

"수십 년째 질 탈출증으로 고통받아 온 70대 할머니가 제 이야기를 들은 뒤 용기를 내 진료와 수술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할 때 가장 보람 있었습니다. 반면 선천성 기형으로 인한 방광기능 장애로 평생 고통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 더 나아질 수 없다고 말해야 할 때 정말 안타까웠지요."

이 과장은 여성도 이젠 성적인 자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침실의 합주는 안단테로 하세요'라는 멋진 말로 표현한다. "우선 각자가 맡은 파트를 완벽하게 마스터한 이후에 박자·음색·강약을 맞춰 가야 아름다운 합주가 된다"는 설명이다.

"여성도 어떤 때 흥분하고 기분이 좋은가에 대해 주도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내 몸인데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남편 위주로 끌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신음소리는 진심이 아닌 경우가 많지요. 자기 몸에 대해 알고 남편과 소통하며 둘이 맞춰 가야 건강한 성생활은 물론 삶의 활력도 따라올 겁니다."

soney97@busan.com

이경미 과장은

1975년 인천 출생. 2000년 부산대 의과대학 졸업. 2005년 비뇨기과 전문의 취득. 2005년 부산대병원 재활센터 근무. 2007년 2월 부산대 비뇨기과 박사, 3월 부산의료원 비뇨기과 과장 부임. 2009~2010년 '위풍당당 명품 성강좌' 강의. 2011년 신라대 대학원 성의학 강의. 2013년 부산의대 겸임교수. 2014~2015년 MBN '황금알' KBS '아침마당' 등 출연. 2015년 '착각하는 남자, 고민하는 여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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