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위기에 빨리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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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준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한국 사회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전쟁 중이다. 지난달 20일 1번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24일 만에 3명의 감염자를 거친 4차 감염자가 나왔다. 이렇게 메르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일치단결해야 할 국민, 정부, 병원은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국민은 무능한 정부를 탓하고, 병원은 정부가 통보를 해 주지 않았다고 탓하고, 정부는 병원의 허술한 대처를 탓하고 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치료를 받기 위해 여러 군데 의료시설을 돌아다니는 의료 쇼핑 관행이나 여러 친구나 가족이 환자를 문병하는 문화도 2차 감염 확산을 불렀다"며 한국 사회의 관습을 지적했다.

최근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현장 대응 능력 부족 드러내

위의 명령만 기다리는 한국 사회
'권력 간극' 매우 크기 때문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함께
민주적 조직 문화 만들어야

2003년 사스 위기 당시 중국 정부는 정보를 통제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감염자가 급속히 늘자 결국 전염병 발발을 인정하고 사스를 통제하기 위해 뒤늦게 엄격한 격리 조치를 취했다. 당시 우리는 무능력하고 비민주적인 중국을 조롱했다. 이번에 메르스가 발병하자 우리 정부는 2주가 넘는 동안 메르스 환자들을 치료했던 병원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유언비어가 유포되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제 중국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웃을 차례가 되었다.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세월호 침몰, 그리고 메르스 확산. 최근에 나타난 일련의 국가적 위기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은 한국 사회의 현장 대응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즉, 정보가 가장 많은 현장의 행위자들이 사건의 초기 단계에서 주도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무엇인가 윗선의 눈치를 보고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현장에서 초동 대응에 성공했다면 충분히 2, 3차 감염자를 방지할 수 있었고, 그랬더라면 대통령이 외교 일정까지 취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과거 군사정부에서는 청와대가 상대적으로 작은 쟁점까지 체크해 실무부처에 일일이 지침을 하달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정부에서는 부처에 상당 부분 결정권이 이양돼 있다. 이처럼 권한 이양이 많이 되었음에도 왜 우리는 아직도 윗선의 행동거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왜 국정회의를 하면 각료들과 대통령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보다는 대통령이 지시하고 각료들은 받아 적는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네덜란드의 경영학자 길트 홉스테데가 '권력 간극(power distance)'이라는 개념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권력 간극이란 아랫사람이 느끼고 인정하는 권력의 불평등 정도를 의미한다. 권력 간극이 작은 국가에서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가 상호의존적이고 민주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는 형식적 위치에 관계없이 보다 평등할 것이고, 하급자들이 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것이다. 반면, 권력 간극이 큰 나라에서는 하급자가 전제적이고 가부장적인 권력 관계를 그대로 수용하기 쉽다. 하급자는 사람의 권력은 단순히 그 사람의 특정한 형식적 위치, 계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문화에서 권력은 윗사람에게 집중되고, 하급자는 스스로 움직이기보다는 상사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 특징이다. 일상에서 상급자와 하급자가 서로 이름을 부르면 권력 간극이 작은 경향이 있고, 이름보다는 직함을 부른다면 권력 간극이 큰 경향이 있다.

1967년부터 1973년 사이 홉스테데는 문화 차이가 경영진의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기 위하여 50개국의 IBM 직원 11만 7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권력 간극은 라틴국가(남미와 프랑스), 아시아, 아프리카, 아랍 지역에서 매우 크게 나타났다. 반면, 북유럽과 게르만 지역, 그리고 영국과 미국에서는 상당히 낮은 점수가 나왔다. 장군이 부사관에게 의견을 묻고 작전을 결정한다는 이스라엘은 매우 작은 권력 간극을 보였고, 아랫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위의 명령을 기다리는 한국의 권력 간극은 매우 크게 나타났다.

마지막 질문을 통해 정리해 보자. 앞서 우리는 권력 간극을 아랫사람이 느끼고 인정하는 권력의 불평등 정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조직에서 아랫사람은 나를 어떤 스타일의 지도자라고 생각할까?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는 합의적인 지도자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지도자라고 생각할까? '나의 하급자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내가 윗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권력 간극이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조직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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