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했다던 필리핀 선원 사인은 '인권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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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부산 남항에 정박한 한 어선에서 외국인 선원과 한국인 선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한 외국인 선원이 남태평양에서 조업하던 중 병이 났지만, 치료도 받지 못하고 폭행에 시달리다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경, 상습폭행 선장 구속
아픈 선원 때리고 방치 혐의
폭우 속 갑판 '차렷' 괴롭힘도


외국인 선원에 대한 심각한 인권 유린(본보 5월 21일 1·3면 보도 등)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한국이 또 한 번 국제사회의 입방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는 8일 급성 심낭염에 걸린 외국인 선원을 한 달 넘게 내버려 둬 숨지게 하고, 다른 외국인 선원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 등)로 원양 참치 연승 S호 선장 이 모(67) 씨를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사건은 지난달 7일 부산해경 상황실에 배에 탄 필리핀 선원 K(43) 씨가 심장마비 증세로 숨졌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달 26일 조업을 끝낸 S호가 감천항에 입항하자마자 선원들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부산해경 수사팀은 폭행 사실을 실토했다가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입을 열지 않는 선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해경 조사 결과 선장 이 씨는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요구하는 K 씨를 수시로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선장은 K 씨에게 "꾀병 부린다"며 발로 밟거나, 몇 시간씩 차렷 자세로 갑판에 세워 놓고 비와 파도를 온몸으로 뒤집어쓰게 한 것으로 드러나 수사팀을 경악게 했다.

S호에 승선한 다른 외국인 선원도 수시로 폭행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원양어선은 지난 3월 부산 감천항을 떠나 남태평양 솔로몬제도 인근 공해 상에서 참치잡이 조업 중이었다. 선장과 기관장 등을 포함해 한국인 6명,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인 19명 등 모두 25명이 승선했다.

해경에 따르면 수년간 한국에서 선원 생활을 해온 K 씨는 지난 3월 19일 한국에 입국해 이틀 뒤 S호에 승선했다. K 씨는 출항 3일 뒤 가슴 통증과 손발 부종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사망 보름 전부터는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악화했다. 부검 결과 심낭(심장을 싸고 있는 막)에 약 3천㎖의 고름이 차 있어, K 씨는 급성 심낭염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민소영 기자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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