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임금님은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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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팀장

신문을 보다 보니 제목에서조차 오자가 드물지 않다. 지면은 늘어나고 인력은 따라 주지 못하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이런저런 신문이 많아진 데다, 몇몇 신문을 빼놓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임금이 박한 것도 저런 현상을 빚는 데 한몫했을 터. 하지만, 그런 건 다 변명일 뿐이다. 어쨌거나, 적어도 '신문'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라도 오자는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마다 진실을 보도하겠다지만, 틀린 글자가 툭툭 튀어나오는 지면이라면 설득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찌질한 퍼포먼스? 커다란 자유를 얻었으니 상관없어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어느 기획전 참여 작가를 인터뷰한 기사 제목이다. 한데, '찌질하다'라는 우리말은 없다. 비슷한 말을 찾자면 이런 정도.

* 지질하다: ①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 ②싫증이 날 만큼 지루하다.

큰따옴표 안에 있으니 용서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이 작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도 아니어서, 면피가 되지는 않는다.

<푹 꺾인 상하이 증시 … 졸지에 6조원 날린 중국 갑부들>이라는 제목에선 '갑부들'이라는 말이 모순이다. '갑부(甲富)'가 '첫째가는 큰 부자'이기 때문이다. 첫째가는 부자가 여럿일 리는 없으니, 복수를 뜻하는 접미사 '-들'이 붙을 이유가 없다.

<알딸딸 … 아, 달달>

과일 맛 소주 전쟁을 다룬 기사의 이 제목은 '딸딸-달달'로 멋지게 운을 맞춘 것 같지만, 실은 엉터리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보자.

* 달달: ①춥거나 무서워서 몸을 떠는 모양. ②작은 바퀴가 단단한 바닥을 구르며 흔들리는 소리. 또는 그 모양. ③글 따위를 막힘이 없이 시원시원하게 외는 모양.

'달달하다'는 달다는 말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저 제목은 술을 먹고 취해서 몸을 떠는 모습을 그린 셈이 된다.

<분리수거하는 국왕, 자전거 타고 출근하는 재벌… 여기선 일상>은 스웨덴 이야기를 다룬 기사 제목인데, '분리수거'가 엉터리다. 수거는 거두어 간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국왕을 청소부로 만들지 않으려면 '분리 배출'이라 써야 한다. 뭘 그리 깐깐하게 따지느냐, 다들 그렇게 쓰는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표준사전이 아예 이렇게 박아 놓았기 때문이다.

* 분리수거(分離收去): 쓰레기 따위를 종류별로 나누어서 늘어놓은 것을 거두어 감. '따로 거두기', '따로 거두어 가기'로 순화.

안 그래도 '기레기' 소리 듣는 판인데, 이런 사소한 실수라도 좀 줄였으면 싶다. 이병주의 소설 '행복어 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기사가 실린 신문이라도 교정이 틀려 있다면 틀린 신문입니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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