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하천 20년, 방향 잃은 물길 1부] 5. '혈세의 늪' 중복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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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았다… 허물었다… 연일 '밑 빠진 하천에 혈세 붓기'

온천천 남산본동교 상류는 지난 10여년 간 낙차공 철거와 조성이 반복돼 왔다. 사진은 2015년 재해복구 공사와 함께 다시 낙차공이 조성되고 있는 모습. 이대진 기자 djrhee@

'밑 빠진 독에 물(세금) 붓기'가 하천에서 벌어지고 있다. 생태 정비라는 이름으로, 수질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수십 수백억 원의 혈세가 들어갔지만 현실은 그대로 거나 오히려 나빠졌다. 독을 고치지 않고 물만 쏟아부은 결과다. 그 많던 혈세는 어디로 흘러가 버렸을까.

금정구 남산동 온천천 상류
낙차공 설치·철거만 4차례
북구 화명동 대천천 상류
지난해 수해로 식생 쓸려가자
덜컥 콘크리트 호안 설치

계획 세운 뒤 예산 받지 않고
'선예산 후계획' 치적 공사
세금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공사 잘 날 없는 남산교

지난 4월 부산 금정구 남산동 남산본동교 일대. 지난해 여름 폭우로 수해를 입은 온천천 상류 구간에 복구 공사가 한창이었다. 포클레인은 쉴새 없이 강바닥을 파헤치고, 레미콘 차량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두 달 뒤, 취재진이 다시 찾았을 때 현장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눈에 띄는 건 강바닥에 조성된 3개의 '낙차공(하상 경사를 완화하기 위한 구조물)'이다. 2011년 소음을 이유로 없앤 낙차공이 4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 지역은 2000년대부터 낙차공에 얽힌 '강바닥 수난사'를 겪고 있다. 지난 2003년 금정구청은 오래된 낙차공(어도)을 철거했다 2005년 자연형 하천 정비사업을 벌이며 다시 만들었다.

그러다 낙차로 인한 물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일자 6년 만에 다시 낙차공을 없앴다.

10여 년간 낙차공을 허물었다 다시 짓기를 4차례 반복한 것이다. 그 사이 하천 제방 양쪽으로 호안 조성 공사도 수차례 반복됐다. 1~2년에 한번 꼴로 크고 작은 공사가 계속된 셈이다.

금정구 관계자는 "하폭이 좁고 경사도가 급한 상류다 보니 경사도를 낮춰 유속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낙차공의 운명도 장담할 수 없다. 주민 윤 모(72·여) 씨는 "지난 번 물난리 때문에 공사를 하나 보던데, 안전도 좋지만 시끄러운 물소리가 안 났으면 좋겠다"고 우려를 보냈다.

■다시 건드렸다 '물거품'

"쿵 쾅 쿵 쾅", "뚝 딱 뚝 딱".

지난 1일 부산 화명동 대천천 상류. 제2대천교 부근에서도 낙차공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천 양쪽으로는 콘크리트 호안이 조성 중이었다. 큰 바위 사이로 잿빛 시멘트가 채워졌다.

이 지역은 지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36억 원을 들여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벌였던 곳이다. 대부분의 구간에 식생 블록을 쌓아 바위 틈새와 강바닥은 수초들이 번성했다. 주민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강을 가꾼 결과 갯버들, 달뿌리풀, 갈대, 억새 등 온통 녹색 빛이 넘쳐났다.

하지만 지난 여름 물난리를 피해갈 수 없었다. 나무들이 뽑혀 나갔고 호안 일부도 무너져내렸다.

문제는 복구공사였다. 식생 블록은 콘크리트 호안으로 바뀌었고, 전에 없던 낙차공도 생겼다. 주민들이 반대해 계획상 3개였던 낙차공은 1개로 줄었다.

대천천네트워크 강호열 사무처장은 "수해 복구 공사라도 하천의 전체 식생을 고려한 밑그림 속에서 이뤄져야 중복 공사 없이 원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며 "10년 주민 노력이 물거품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석대천, 수영강 등 재해 복구 중인 다른 하천들도 비슷한 사정이다. 해운대구 반송동 일대 석대천 하류 구간은 지난해까지 104억 원을 들여 생태하천 조성 공사를 벌였지만, 현재 20억 원을 들여 절반 정도 구간을 다시 '옹벽식'으로 정비하고 있다.

■예산부터 따고 보자?

지난 2011년 '온천천 하류 생태하천복원 사업'이란 명목으로 국비 35억 원이 내려왔다. 시비를 보태 연제구와 동래구 온천천 호안을 정비하는 70억짜리 대공사가 또 진행됐다. 그런데 실제 공사는 절반 정도만 진행됐다.

실시설계까지 마쳤지만, 정작 현장 실사를 해 보니 공사가 불필요한 구간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쓰다 남은 국비 16억 원은 반납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지역 국회의원이 자신의 '재선 프로젝트'를 위해 예산을 따왔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표밭을 다지는 데 하천 정비와 편의시설 조성만큼 '눈에 띄는' 사업도 없다.

최근 온천천의 사례는 그간 하천 공사에 불필요한 혈세가 낭비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천 전문가들은 계획에 따른 예산 책정이 아니라, 예산부터 받아놓고 계획을 세우는 선후관계가 뒤바뀐 행정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주기재 교수는 "지금껏 '생태하천'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사업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자신의 치적 쌓기용으로 예산을 따내 지자체에 내려준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공무원들은 내려준 돈을 못 쓰면 무능하다고 평가받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 공사를 진행하고, 결국 혈세를 낭비하는'중복 공사'로 이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생명그물 이준경 정책실장은 "온천천에 불필요한 공사를 중단하고 예산 낭비를 막은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지만, 국비를 절반 가까이나 반납한 건 그동안 하천정비 공사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는지를 보여주는 웃지 못할 사례"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river@busan.com

특별취재팀 : 박진국, 김백상, 황석하,이대진, 장병진 기자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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