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노인 취업자 수, 청년층 바짝 따라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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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이 대학원졸인 임모(66) 씨는 4개월째 부산 해운대구 모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일을 하고 있다.

직장 다니던 시절 국민연금에도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세대라 연금도 많지 않고 생계가 힘들어져 택배 배달원에 신청을 했다.

부산 60세 이상 취업자 수
지난해 4/4분기 24만 5천 명
청년층보다 불과 1천 명 적어
2004년 18만 명 차 따라잡아

청년 취업자는 4만 명 줄어
청년층 기피하는 부산 일자리
노인이 채우고 있다는 방증
무직 자녀 부양까지 '이중고'

일주일에 5~6일 매일 3~4시간씩 일을 하며 임 씨가 받는 월급은 45만~55만 원. 그나마도 임 씨는 생활에 보탬이 많이 되고 같은 연배의 친구들을 매일 만날 수 있다며 만족해 하고 있다.

임 씨는 "사업을 하다 잘 안 되기도 했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이 나이쯤 되면 일을 하면서 속상해하는 경우는 드물고 참는 데도 익숙해져 있어 힘든 점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기장시니어클럽을 통해 해운대 모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는 30명의 고령자 중 40%가량이 대졸자다.

노인 택배 일자리의 경우 일이 고된 편에 속하지만 임금이 다른 일자리에 비해 높다는 이유로 지원자가 많은 편이다.

부산의 노인 취업자수가 청년 취업자수를 따라 잡았다.

이는 질 낮은 일자리에 청년들이 가지 않으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노인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는 현실 때문으로 풀이된다.

노인들이 질 낮은 일자리를 메꾸는 동안 청년들은 실업자로 전락하거나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27일 통계청과 부산복지개발원에 따르면 2014년 4/4분기 기준 부산의 60세 이상 노인의 취업자수는 24만 5천 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15~29세 청년 취업자수인 24만 6천 명과 비슷한 수치다.

10년 전인 2004년의 경우 청년 취업자수가 노인 취업자수보다 갑절 이상 많았지만 10년동안 격차가 좁혀져오다 결국은 두 수치가 만나기에 이르렀다.

2004년에는 부산의 노인 취업자수가 13만 명으로 지금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었던 반면 청년 취업자수는 30만 9천 명으로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전국의 연령별 취업자수 분포에서도 청년과 노인의 취업자수 격차가 점점 좁혀져 오고 있지만 부산보다는 아직 격차가 조금 더 남아 있다.

통계청은 1주일에 1시간 이상 수입을 목적으로 일을 한 이를 취업자로 보고 조사를 진행했다.

또 통계청이 조사한 고령자(55~79세)의 취업 동기는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54%로 가장 많아 고령층의 절반 이상이 경제적 이유 때문에 취업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번째로 많았던 답변은 '일하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39%)였다. 고령자 중 앞으로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답변한 비율도 62%나 됐다.

원하는 일자리 형태로는 '전일제'를 희망한다는 비율이 66.5%로 '시간제'를 희망하는 비율(33.5%)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높은 임금의,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들이 많은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정 부산복지개발원 정책연구부장은 "청년들의 경우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자발적 실업이 많은 반면 노인들의 경우 빈곤 상태에 놓여 있어 뭐라도 해서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 이 같은 수치가 나온 것 같다"면서 "노인 취업자수가 증가했다고 해서 노인 일자리가 많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만큼 부산에는 청년들이 안 가는, 질 낮은 일자리가 많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또한 이 부장은 "청년 실업이 늘어나는 만큼 취업 못한 자녀들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노인들이 결국 질 낮은 일자리를 찾아 나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며 "'낀 세대'로서의 현재 노인 세대의 고달픈 현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노인 취업자의 숫자만 늘릴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며 부산시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시니어클럽 변재우 부산지회장은 "현재 숫자로 잡혀 있는 이들 중 상당수는 정부와 지자체가 만들어내는, 임금이 아주 낮은 시간제 일자리의 취업자로 볼 수 있는데 노인 취업이 생계형임을 고려할 때 임금이 높고 질이 높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선심용으로 일자리만 늘릴 것이 아니라 민간 일자리 중 노인들이 일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내는 역할을 부산시가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는 노인일수록 덜 아프고, 덜 우울하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점에서 노인 취업자가 많아지는 것의 긍정적 측면도 고려돼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 busan.com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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