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 '空'을 찾아 떠나는 삶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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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오체투지로 7개월에 걸쳐 부탄의 불교 성지를 순례하고 있는 수행자. 작가정신 제공

부탄의 1인당 GNP(국민총생산)는 2천 달러에 불과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유명하다. 유럽 신경제재단(NEF)이 국가별 행복지수를 비교한 결과 1위였다. 부탄 국민 97%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부탄에는 우울증, 자살, 노숙자가 없다. 같은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68위였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에 넘쳐나는 실업자와 노숙자 문제가 골치를 썩인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다 1인당 GNP 2만 달러의 자부심이 무참하다.

부탄 왕조는 권한을 승단에 넘겼고 토지를 국민에게 나눠 줬으며 GNP 수치에 매달리는 대신 GNH(국민행복지수)를 관리한다. 이는 불교를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불국기행'을 떠나 첫 번째 다다른 부탄에서 저자는 살아 있는 꽃을 꺾지 않으려고 꽃병에 조화만 꽂는 부탄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는다. 답사 겸 순례를 이어가다 문득 오체투지 수행자와 맞닥뜨린다. 

불국기행 / 정찬주
남루한 옷차림에 비쩍 마른 61세 남자. 손주 재롱을 즐기는 대신 고생을 자처했다. 하늘에 맞닿은 고개를 허위허위 3개월에 걸쳐 넘었다. 쌩쌩 달리는 차량 바퀴가 일으키는 흙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차로 한나절이면 닿았을 거리. 하지만 앞으로 4개월 더 신산을 겪어야 목적지에 닿는다. 사람이 나아갈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 그것은 가장 평화로운 행위인데, 끔찍한 고통을 동반하는 건 역설적이다.

"고행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가족이 잘 되기를 바라고…. " 저자가 고행을 자처하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이에 저자는 "오체투지란 나를 비운 마음자리에 연민과 슬픔을 채우는 수행이 아닐까?"라고 되새긴다.

이 대목에서 한국 사회의 여러 장면이 겹쳤다.

가까이 세월호 선체 인양의 원력을 세운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땅에 엎드렸고, 일자리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머리와 배와 무릎을 길바닥에 내려놓는 오체투지 행렬에 나선다.

불행이 넘치는 사회에서 오체투지는 첨예한 사회적인 행위가 된다. 앙앙불락의 한국 사회에는 채워야 할 연민과 슬픔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정찬주 지음/작가정신/352쪽/1만 8천 원.

김승일 기자 do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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