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사진으로 읽는 역사] 20. 부산역의 한 남성과 제국주의 일본
조선 관문에 선 일본 남성 대륙 침략 나선 국가 상징
한 남성이 철도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흔히 찍을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진 속의 남성은 복장을 통해 일본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진은 단순히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다. 사진의 문구와 소인이 상품으로 만들어진 사진엽서임을 알려 준다. 사진 아래 '조선 부산정차장 홈'이라는 일본어 설명과 함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사진관에서 제작된 일련의 사진엽서 중 하나를 표시하는 178이 적혀 있다.
이런 사진엽서들은 대체로 조선을 상징하는 것들로 컬렉션을 이루고 있다. 그 상징은 크게 전통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으로 대별된다. 전통과 근대의 구별을 통해 문명과 야만을 드러내고 이로써 식민화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도구가 바로 사진엽서였던 것. 그런데 이 사진엽서는 설명 문구처럼 부산정차장 홈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름 모를 한 일본인 남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부산정차장을 보여주는 같은 시기 다른 사진들이 역사나 기차를 사진의 중심에 놓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이런 사진을 찍고 엽서로 만들어 판매했던 걸까?
사진의 소인을 보면, 부산역 앞에 조선토산품과 여행용품을 파는 가토 상점에서 1926년 9월 26일 이 엽서를 구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진엽서를 기념품으로 선택한 사람은 왜 하필이면 수많은 사진 중 이 사진을 선택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 중 하나는 부산과 부산역의 위상에서 찾을 수 있다. 개항 이후 부산은 더 이상 조선의 변방이 아니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조선과 대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그 관문역이 부산역이다.
일본은 부산을 교두보 삼아 조선과 대륙으로 제국주의적 침탈을 추진했고, 그런 과정은 경부선을 비롯한 한반도를 관통하는 철도의 건설로 이어졌다. 조선으로 들어오는 일본인들은 사진 속의 남자처럼 조선과 대륙으로 진출하는 자신의 모습을 이런 사진을 통해 확인했던 것이다. 조선과 대륙으로 침략하는 일본이라는 국가와 동일화된 개인. 이를 보여주는 제국주의의 상징성이 이 사진엽서의 진짜 실체다.
전성현
동아대 석당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