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멘토-김용기 부산의대 명예교수 편] 김동수 부산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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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서의 날 돌이켜 보게 만드는 '거울'

김동수(앞줄 가운데) 교수가 2006년 대한핵의학회 청봉상 수상 기념 축하연에서 김용기(뒷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 교수 등 제자와 가족, 친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용기 부산의대 명예교수 제공

우리는 인간의 삶과 운명을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여정으로 곧잘 묘사한다. 그 여정이 항해의 과정일 때는 보다 더 극적이다. 인간은 끝없이 펼쳐진 가능성의 망망대해 항해에 나서지만 운명의 파도를 맞아 좌초하기도 하고, 때로는 암초에 걸려 꼼짝달싹 못 하다가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한다.

기독교 가정서 성장 한국전쟁 때 월남
5세 때 앓은 척추질환 탓 지체 부자유

어릴 때 꿈 못 버려 만학도로 의대 진학
국내 최초 핵의학·내분비학 개척

생명의 전화 창설 등 사회적 약자 배려
불의 맞서며 스스로를 낮추는 삶 실천


나침반은 항해하는 과정에서 운명의 파도를 만나 좌초해 길을 잃고 표류할 때, 우리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가리켜준다. 인생의 멘토란 나침반 같은 존재로서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나 스승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내게는 삶의 고비마다 크고 작은 도움과 조언으로 바른 길을 인도해준 적지 않은 멘토들이 있었다. 그중에도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가장 중요한 최고의 멘토는 다름 아닌 김동수 은사님이다.

김동수 선생님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질곡의 세월을 살아온 분이다. 선생님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자연히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평양신학교에 진학하였으나 도중에 학교가 폐쇄되는 바람에 중퇴하고,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참화 속에서 자유를 찾아 월남하여 부산에 정착했다. 5살 때 앓았던 척추질환의 후유증으로 인한 부자유스러운 지체 때문에, 어렸을 때 막연하게 꾸었던 의사의 꿈을 버리지 못해 만학도로 부산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 의업에 입문했다.

졸업 후 경제적 윤택함보다는 후학들을 위한 교육과 연구에 헌신하기 위해 모교에 남기로 결심했다. 당시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선생님은 모교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유학하여 핵의학과 내분비학을 연구했다.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핵의학과 내분비학이라는 황무지를 일군 개척자였다. 또한 부산에서 최초로 위기상담센터인 '생명의 전화'를 창설하고 '우리 겨레 하나 되기 운동본부'를 설립하여 북한의 의료 환경을 개선하는 데 일조했다.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에 의해 배반을 당한다. 자기가 쓴 글이나 한 말에 대해 행동으로써 책임을 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있다. 김동수 선생님은 운명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나에게 관념적인 훈계가 아닌 자신의 실천적 삶을 통해 암묵적으로 내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내과 전공의와 초임 교수 시절에 때로는 오만하기까지 했던 내게 선생님은 항상 웃음으로 대하시면서 스스로 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정신분석에서는 치료자를 거울에 비유한다고 학창 시절에 들었던 적 있다. 환자는 치료자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를 성찰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선생님은 나 자신을 가장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명경지수(明鏡止水)였다.

선생님은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시면서 부닥친 시련들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한 분이다. 항상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불의에는 단호하게 맞섰다. 환자들에 대한 선생님의 인간애는 모든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박애정신의 발로였다. 선생님의 인간애는 진료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진료실 밖의 모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나를 비롯한 후학의 눈에 비친 선생님의 일관된 모습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온유하면서도 불의에는 단호하게 맞서며, 대인관계에서는 늘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며 자기의 마음을 겸손하게 갖는 하심(下心)을 몸소 실천하시는 태도였다.

내가 선생님의 병원을 이어 받은 지도 어언 5년이 지났다. 학교에 계속 있었더라도 금년에 정년을 맞을 나이이지만, 지금에 이르러 내 자신을 돌이켜보니 선생님이 걸어오신 길이 결코 예사롭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지극한 관심과 사랑에 내가 얼마만큼 부응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선생님의 도량이 너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철학자 김태길은 "흐르는 세월을 따라 만물이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도 변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 있는 것도 있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수필집을 '흐르지 않는 세월'이라 명명한 이유다. 올해 구순을 맞이한 선생님의 변함없이 일관된 삶의 태도를 보면서 나의 뇌리에서는 '흐르지 않는 세월'이란 어구가 떠올랐다. 역시 선생님은 내 인생의 영원한 멘토이다. 후학들의 좋은 귀감이 되어 주신 선생님의 구순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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