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보다 생존비용 낮추기가 낫다?
입력 : 2015-05-08 19:53:45 수정 : 2015-05-11 11:34:26
지난 6일 밤 결국 공적연금 강화를 둘러싼 논란 끝에 공무원 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되자 자리를 지키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신입사원의 입장에선 지나가다 국민연금공단지사만 봐도 혈압이 오른다. 월급 봉투를 휑뎅그렁하게 만들어 놓고, '40년 뒤에 만나요'라고 말하는 걸 지켜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일렁인다.
다양한 복지국가 분석 통해
바람직한 복지사회 모델 소개
국민들의 존엄한 삶 위해
"저생존원가형 사회" 제시
하지만 고개를 돌려보면 폭탄은 따로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평균 12.8%다. 우리나라는 47.2%로 압도적 1위, 미국과 일본의 2배에 달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도 부끄럽다. 당장 노인 가구 두 곳 중 한 곳은 빈곤에 노출되어 있다.
사회보험의 딜레마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차후 노인이 되어도 일정한 소득은 보장받고 싶지만 당장 과중한 세금 부담은 원치 않는다. 국민도, 정치 지도자도 이 딜레마에 빠져서 갸우뚱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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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회와 그 적들 / 가오롄쿠이 |
이 해답은 학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미권과 북유럽의 사회보장모델을 분석하고 국내에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 토론하고 있다. 홍콩의 경제학자 가오롄쿠이는 '복지사회와 그 적들'에서 역대 복지 국가 모델을 돌아보지만 우리에게도 구체적이고 명쾌하게 다가온다. 그의 눈높이가 한국과 중국처럼 복지 후발 국가들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가에 초점이 맞춰진 때문이다.
덩치가 클 뿐이지 중국의 고민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시장을 믿으면서도 빈부 격차의 가속화는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는 더는 눈에 띌 만한 성장곡선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딜레마에서 가오롄쿠이는 '저생존원가형 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먼저 더 이상 국민소득이 늘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경제발전의 최종 목적은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저생존원가형 사회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의 가격을 낮추어 국민이 실질적으로 부유해졌다고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먼저 고등교육이나 정보통신망처럼 발전된 사회를 따라가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것들의 가격을 국가가 부담하고, 주요 시설의 합리적인 구역 배치로 부동산과 임대료의 상승으로 물가가 뛰는 것을 잡는다. 질병과 실업에 따른 비용은 공동체가 모두 함께 부담한다.
도시의 밀도를 규제해 토지에 대한 비용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게끔 제한하고, 통일된 유통 시스템을 구축해 비용을 절감하는 건 한국 사회에선 실현 불가능하다. 하지만 부유한 국가가 가난한 국민에게 시혜하는 제도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비용을 절감해 국민들이 적은 수입을 가지고도 존엄한 삶을 유지하게끔 한다는 발상의 전환은 명쾌하다. 그가 그리는 생산의 원가를 통째로 낮춰 만든 복지사회는 어떻게 재분배할 것인가로 아웅다웅하는 현실의 비루함을 넘어선다.
1945년 칼 포퍼는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역사주의와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한다. 꿈 같았던 그의 사상은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되었다. 전체주의의 망령으로 수많은 사람이 전쟁터로 향하던 암울한 현실에서 칼 포퍼는 썼고 역사는 진보했다. 변곡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다. 가오롄쿠이 지음/김태성·박예진 옮김/부키/416쪽/1만 8천 원.
조소희 기자 ss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