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카톡 메시지 창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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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부국장 겸 국제팀장

카카오톡(카톡)에서 '1'이라는 숫자가 사라지길 그렇게 간절하게 소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이야기는 네팔 대지진이 발생한 지난달 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진 참사 현장서 날아온 카톡 안부
"카톡" 울릴 때마다 '무사하구나' 안도
당장 먹을 물이 없어 고통 받는 그들
작은 관심이라도 보여 줄 수 있어야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지금은 폐선이 된 동해남부선 구간을 걷고 있었다. 그날, 그 시각, 또 다른 지구 한편에선 지진이라는 대참사가 일어나 아비규환의 전쟁터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때 본보 네팔 통신원인 이용호 '컴시드 네팔' 대표의 카톡이 왔다.

"카트만두에 규모 7.8의 강진이 일어났고,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으며, 산소도, 혈액도, 의약품도, 의료진도 태부족한 상태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저희 집도 출입이 금지돼 한뎃잠을 잘 수밖에 없습니다."

서너 줄에 불과한 내용이었지만 그의 무사함을 확인한 게 무엇보다 기뻤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재앙을 당한 사람한테 어떤 내용의 답장을 보내야 할지는 참으로 막막했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순간적이지만 얄팍한 마음도 들었다. 그에게 '현지 르포'를 부탁할 순 없을까? 그렇게 하기엔 너무 잔인하다 싶어 차마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진 못 했다. 당장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간다는데, 계속되는 여진으로 집이 무너질까 들어가지도 못하고 몸만 겨우 빠져나와서 동가식서가숙한다는데, 거기다 대고 현지 르포라니…. 결국은 아주 담담한 어조로 답장을 보내고 말았다.

그 카톡은 금세 읽히지가 않았다. 대화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어야만 사라지는 숫자 '1'은 만 24시간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다시 떠올리긴 싫었지만 지난 2011년 일본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한 3월 11일에서 멈춘 트윗 '죽고 싶지 않아(しにたくない)'를 내보냈던 '우치다' 씨가 오버랩 되면서 더욱 마음 졸일 수밖에 없었다.

사고가 일어나고 사흘째 되던 27일에야 다시 카톡이 왔다.

"잠깐 미대사관에 왔습니다. 모든 것이 없습니다. 네팔 정부는 물 한 잔도 못 줍니다. 속수무책의 여진으로 모두 바깥으로 나와 노숙을 합니다. 비참 그 자체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쓰고, 또다시 읽기를 기다리는, 숨바꼭질 같은 카톡 대화는 며칠간 그렇게 이어졌다. 전화도 불통인 마당에 카톡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숫자 '1'이 사라지길 기다리며 메시지를 남기고, 확인하는 순간순간이 결코 편하진 않았다.

지진 발생 나흘째인 28일 오후 새로운 메시지가 들어왔다. '카톡, 카톡, 카톡…' 연신 울려 대는 카톡 소리에 놀라서 창을 열었다. 수십 장의 사진이 차례대로 열렸다. 구호품을 기다리는 사람들, 처참하게 무너진 건물들, 집단 텐트촌 풍경, 공항으로 몰려든 사람들, 건물 잔해 더미 위에 덩그러니 놓인 주인 잃은 신발들, 노숙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달랑 담요 한 장 깔고 누운 채 출입문 문고리에 수액을 걸어 놓고 맞는 부상자 모습까지. 외신 사진을 통해 보던 그것과는 기분이 달랐다.

사진은 이 통신원이 직접 휴대전화로 찍은 것이었고, 경찰서까지 찾아가 어렵사리 전송한 것이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가 보내준 사진 일부는 신문에 실었고, 부산닷컴엔 전부를 올렸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마지막 한마디를 곱씹어 읽었다.

"지금 구조는 난망합니다. 구호가 필요합니다. 먹을 것도, 물도, 의약도, 전기 통신 모두 바닥, 아니 없습니다. 대형 텐트, 바닥 매트리스, 담요가 가장 절실합니다. 제발 돈 들여서 '노란 조끼' 입고 다니며 자신들 선전만 할 게 아니라 비싼 항공료 아껴서 성금으로 보내면 쌀과 생수, 텐트, 담요를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그 위중한 순간에도,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가 우리에게 보내온 카톡 메시지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적어도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조금이라도 의지를 보여 주길 원했던 것이다. 이제야말로 그들 곁에 우리가 있다는 걸 보여 줄 때다. 매 순간 한 사람씩 죽어가고 있고, 우리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려내야 한다.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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