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묻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詩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는지 묻는다.'

시집에 쓰인 '시인의 말'이 딱 한 줄이다. 1995년 '마창노련문학상'을 받고 등단한 노동자 시인 표성배(48·사진)가 일곱 번째 시집 '은근히 즐거운'(사진·산지니)을 내놨다. 팍팍한 '자본의 시간' 속에서도 삶의 온기를 찾으려 애쓴 시인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시집이다.

노동자 시인 표성배의 일곱 번째 시집
예리한 비판적 시선 속 인간미 엿보여


그는 '쇳밥을 너무 먹어 온몸이 딱딱 쇳소리를 내'고 '입만 열었다 하면 뾰족한 날카로운 딱딱한 말들이 튀어나와 낭패'(탓)라면서도 라면을 끓여 이웃들을 소리쳐 부르는 일요일(은근히 즐거운)을 손꼽아 기다린다.

물론 '아침 일찍 출근해서 살펴봤더니/어라!/나보다 먼저 일할 준비를 끝'낸(새 기계) 기계의 위용에 겁먹고 '제복을 칼같이 차려입은 용역들'(정리해고)을 앞세운 쓰나미 같은 정리해고 소문에도 초연하긴 힘들다.

하지만 시인은 체 게바라의 '나의 삶'을 읽으며 고민한다. '…내 나이 열다섯 살 때,/나는/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그리고……,/여기까지 읽다가 나는 왜 열다섯 살 처음 공장에 출근하던 내 모습을 떠올렸을까/전사(戰士)는 전사인데 왜 산업전사가 되었을까/산업전사에게도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할 깊은 고민이 필요할까…'(체 게바라를 읽는 밤). 강승아 선임기자 seung@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